초대형 국책사업 유치는 당선 보증수표?

"과학벨트·신공항 잡아라"
지역 의원들 유치전 과열
대선 주자들도 입장 갈려
여야 지도부 교통정리 '끙끙'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동남권 신공항 등 조 단위 국책사업들이 연초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들 사업은 수조원대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데다,유치 시 추가적인 외자유입 등 부가적인 효과가 크기 때문에 따기만 하면 인근 지역구 의원들에게는 당선 보증수표나 다름없다.

그러나 정부가 사업지 선정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너도나도 사업을 유치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여야 모두 사업지 선정 문제를 놓고 내홍 직전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여기에 여야 대선 주자들도 각자 표(票) 계산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국책사업 유치가 지역발전 차원을 넘어 내년 총선 대선의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사업지 선정 문제로 시끄럽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24일 "국책사업 유치운동이 도를 넘었다"며 "정부는 합리적 판단하에 신속히 결정을 내리고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특히 7조원 이상이 투입될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과 관련,"부산과 대구 · 경북 지역에서 이달 말 각각 시민단체들이 몇 만명을 모으고 몇 백만명 서명운동을 하는데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 한 쪽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며 "두 지역의 유치결의 대회는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자칫 이 문제로 양측이 신경전을 넘어 지역갈등으로 바화될 경우 선거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7년간 3조5000억원이 투입될 과학벨트 사업지 선정과 관련해서도 정부와 청와대에 입지 선정작업을 서둘러 줄 것을 요청키로 했다. 지도부는 앞서 충청권 의원들의 유치 정당성 주장에 대구 · 경북권이 반박하고,여기에 경기도 지역 의원들까지 가세하면서 논란이 커지자 오는 4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입지 선정 때까지 '함구령'을 내렸다. 그러나 분란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아예 선정 시기를 앞당겨 논란을 조기 불식하자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러나 과학벨트 등 국책사업 유치는 지역 의원들의 당락뿐 아니라 내년 12월 대선에 나설 예비 주자들의 표 계산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게 돼 더욱 복잡한 양상이다. 친박계인 서병수 최고위원은 "과학벨트를 충청권에 만드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공약이며,이 원칙만 확인하면 불필요한 오해가 사라질 것"이라며 충청권 입지를 공식화할 것을 촉구했다. 대선에서 충청권 표가 꼭 필요한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김문수 경기지사는 "과천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떠나면 그곳을 어떻게 할 거냐.과학벨트는 과천에 유치돼야 한다"고 했다. 김 지사는 박 전 대표와의 당내 경선을 일단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표가 많은 수도권 민심을 살피고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과학벨트 문제를 놓고 '분당(分黨)'까지 거론될 정도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 '충청권 유치'를 당론으로 했으나 김영진 의원 등 광주지역 의원들이 "지식경제부가 광주를 연구 · 개발특구로 지정했다. 특구 지정이 과학벨트 유치와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갈등 양상을 빚고 있다. 충청권 의원들은 "분당하자는 거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손학규 대표가 나서 호남권을 달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