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재계 총수 간담회] "지방가기 싫다"…석ㆍ박사급 R&D 인력 이탈현상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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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도권 R&D센터 필요한가대우조선해양은 수도권에 연구소를 짓기 위해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옥포 연구소 등 기존 지방 연구소만으로는 연구 · 개발(R&D) 인력의 수준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연봉보다 자녀교육 여건 따져
이공계 우수인력 지방 기피
대우조선 등 일부기업 이미 서울근처 부지 물색
지방 반발이 문제
회사 관계자는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한 석 · 박사 인재들을 유치하는 데 가장 어려운 대목이 교육 여건이 나쁜 거제도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서울 거주라는 최소한의 이점이 있어야 우수 인력 유치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수원벨트'를 넘어라
주요 대기업들이 24일 서울 여의도 KT 빌딩에서 열린 '수출과 투자,고용 확대를 위한 대기업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수도권 R&D센터 건립을 지원해 달라고 건의한 것은 그만큼 인재 확보 문제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R&D 인력 대부분이 연봉이나 장래성보다는 자녀들의 교육과 문화접근성 등을 따진다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방 R&D센터의 어려움을 담은 신조어로 '수원 벨트'라는 말이 있다"며 "수원 이남에 R&D센터가 있으면 우수 인재 유치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서울 사옥에 있던 디자인 인력을 수원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직원들의 반발로 이 방안을 백지화한 적이 있다"며 "수원만 해도 지방이란 인식이 디자인 인력들 사이에 팽배했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수도권에 R&D센터를 짓지 못하는 것은 규제 때문이 아니다. 현재 수도권에는 대규모 R&D센터를 지을 부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 여유부지가 국유지나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의 수도권 R&D센터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그린벨트를 대폭 완화하거나 2012년 이전 예정인 과천정부청사를 R&D단지로 활용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 반발할 듯
LG전자는 2009년 구미에 있는 R&D센터를 경기 평택 등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홍역을 치렀다. 지방 상공회의소와 지방자치단체,지역구 의원들이 일제히 LG전자의 이전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R&D센터를 이전하면 지역 경제가 침체된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지방에 있는 R&D센터를 수도권으로 이전하려면 지자체와 전면전을 치러야 한다"며 "해당 지역과 완전히 손을 끊을 생각이 없으면 시도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주요 대기업들은 이 대통령이 이날 간담회에서 "기업이 수출을 늘리고 투자를 촉진하는 데는 고급인력들이 많이 필요하다. R&D센터를 서울이나 수도권에 하면 고급인력들을 데려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지방에 연구소가 집중돼 있는 유화,철강 업체들이 이 대통령의 언급에 기대를 걸고 있다.
유화 업계 관계자는 "유화 업체들의 기술연구센터가 몰려 있는 대덕연구단지만 해도 연구인력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며 "수도권에 R&D센터를 설립할 수 있게 되면 상황이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기업 R&D센터가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를 감안할 때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수 인력의 수도권 유출이 가시화하면 지역 주민과 정치권의 반발 속에서 자칫 기업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기업들의 수도권 R&D센터 설립을 돕기 위해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지와 관련해서는 아직 이견이 많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기업들의 요구를 가급적 수용하겠다는 원론적인 견해를 밝힌 것뿐"이라며 "그린벨트 해제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더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형석/이정호/박동휘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