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국회의원 24시

오래전에 직업과 평균수명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장 일찍 죽는 직업 1위가 언론인이었고 가장 오래 사는 직업 1위가 종교인과 정치인이었다. 언론인과 종교인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정치인이 좀 의외였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통계의 마술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치인의 조사 대상은 대체로 현역이었을 것이다. 현역 정치인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심신이 강한 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사 대상을 현역에서 물러난 정치인들로 확대하면 정치인의 수명은 대폭 낮아질 것이다. 실제로 국회의원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대부분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엄청난 스케줄과 고강도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나 자신의 평균적인 하루 일정을 공개해 본다. 아침엔 보통 6시에 일어난다. 샤워와 간단한 스트레칭 그리고 머리손질을 끝낸 후 조찬 약속 장소로 향한다. 조찬 미팅은 1주일에 4~5차례 있는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현안이나 정책 또는 사회의 흐름에 대해 의견을 나누거나 조언을 받는다. 조찬이 없을 때에는 아침 운동을 하거나 날씨만 괜찮으면 자전거를 타고 의원회관으로 출근한다. 조찬모임이 끝나면 대개 오전 9시쯤이 되는데 의원회관이나 선거구 사무실 또는 여의도 중앙당사로 9시쯤 가서 아침 회의를 갖는다.

아침 회의에는 그날 예정된 회의나 행사에 관한 자료를 검토한다. 10시 이후에는 해당 상임위원회 관련 회의(국회가 개회 중인 경우) 또는 국회 내 각종 토론회에 참석하거나,그렇지 않으면 외부 인사와 민원인들을 면담한다. 오전에 선거구에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급히 다녀오기도 한다.

국회의원들은 대개 점심을 지인이나 정부 부처 관계자 혹은 민원인들과 함께 한다. 내 경우는 대체로 기자들과 한다. 기자들과 점심을 먹다 보면 반주가 지나쳐 오후 내내 힘들게 보낼 때도 있다. 오후에는 국회 회기 중인 경우 상임위나 본회의에 참석하지만,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약속이 밀린 손님을 면담하거나 각종 토론회 및 행사 참석차 여의도나 지역구를 오간다. 주말의 오후 일정은 결혼식,회갑연,체육 및 종교행사 등으로 채워진다. 저녁은 선거구나 국회 주변의 모임에 잠시 참석했다가 주로 기자나 동료 의원들 아니면 지인이나 후원자들과 함께 한다. 저녁 자리에서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폭탄주가 오가는 술자리일 확률이 크다. 그 저녁자리가 2차로 이어지거나 아니면 또 다른 저녁 약속 자리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밤이 늦어 심신이 녹다운된 채로 집을 향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상갓집이 한두 군데 더 남아 있다. 결국 기진맥진해 집에 도착하면 이미 밤 12시를 넘기기 십상이다. 아내는 어느덧 잠이 들어 있고,아이들은 각자 방에서 인터넷에 빠져 있다. 강아지 두 마리만이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정두언 < 한나라당 국회의원 dooun4u@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