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통제 산업재로 확산…기업들 "정부 개입 지나쳐"

● 30대 주요 대기업 설문

수익 악화 불가피 발동동 "원료값은 크게 올랐는데…"

"지난 1년 새 조사 받아" 83%
"경영에 상당히 부담" 43%
"미봉책 그칠 것" 90% 달해
정부가 철강업체를 대상으로 철강재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는 등 인위적 시장가격 관리에 나서면서 기업들이 난감해하고 있다. 연초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의 전방위 가격 통제 압박이 석유류 밀가루 설탕 등 일반 소비재에서 산업재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정부의 물가관리 대책과 관련,기업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부담은 예상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30개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 조사한 결과 이명박정부 들어 공정위의 기업조사 횟수와 강도가 노무현정부에 비해 더 심해져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료 값은 뛰는데…' 속타는 철강업계

철강업계는 정부 주문에 따라 일단 철강재 가격 인상을 보류했지만,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철광석 유연탄 철스크랩(고철) 등 쇳물을 만들 때 필요한 원료 값이 이미 급등해 제품 가격 인상 없이는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서다. 올 1분기 강점탄 기준가격은 t당 220달러였으나 최근 현물시장에서는 380달러대까지 치솟았다. 강점탄은 쇳물을 만들 때 필요한 유연탄의 50%를 차지하는 원료다. 철광석 가격 역시 브라질 발레 등에서 들여오는 올 1분기 기준가격은 t당 140달러였으나 스폿시장에서는 180달러대까지 급등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유연탄과 철광석 값이 각각 70%,30% 뛰었다는 얘기다. 원료 값은 급등하고 있지만 제품 가격엔 이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철강업체들의 실적은 더 악화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원료 값이 t당 50달러 이상 오르면 포스코 현대제철 등 고로 업체들이 쇳물을 만들 때 들어가는 원가는 35달러 정도 늘어난다. 사정이 이런데도 철강업계는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고,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주요 수출국으로부터 덤핑 제소를 받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물가 잡으려 기업만 압박

정부의 가격 통제 압박이 거세지면서 기업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공정위 조사와 관련한 한경 설문에 응한 한 대기업 임원은 "국제 원자재 가격 및 해외 제품 가격 상승 요인을 감안하지 않고 물가 상승을 기업의 책임으로만 돌리려는 정부 행태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현 정부의 의지가 점점 퇴색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 긴급 설문에서 '공정위의 기업조사가 경영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상당히 부담된다'는 답변이 43.3%(13개 업체),'대체로 부담된다'는 응답이 46.7%(14개)로 90%를 차지했다. '별 영향 없다'고 답한 기업은 10%(3개)에 불과했다. 지난 1년 새 공정위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기업은 83.3%(25개)에 달했다. 석유값은 물론 서민 생활과 밀접한 94개 생활필수품을 대상으로 사상 최대 직권조사를 벌이고 있는 공정위의 활동이 경영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 정부 들어 공정위의 기업조사 강도가 세졌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전체의 70%(21개)가 '그렇다'고 답했다. '전 정부와 비슷하다'는 의견은 16.8%(5개),'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6.6%(2개)로 각각 집계됐다.

기업들은 공정위의 물가 단속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공정위의 물가 단속 효과를 묻는 질문에 전체의 90%(27개)는 '원가 상승 요인이 많아 단기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공정위의 자료 제출 요구에 대해선 83.3%(25개)가 "강압적이지만 어쩔 수 없이 협조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정호/장창민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