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빌미된 대법원·헌재 업무 중복 '수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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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헌재 출범 이후 미묘한 갈등…사법부 재판, 헌법소원 대상 안돼'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역할 혼선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27일 여권 내부에서 제기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두 기관의 위상과 역할을 둘러싼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역할 조정 방안 의견 엇갈려
대법원과 헌재의 역할 중복은 1988년 헌재 출범 직후부터 제기된 오래된 논쟁거리다. 이 문제가 여권 일부에서 추진 중인 헌법 개정과 맞물려 '개헌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어 법조계의 관심이 뜨겁다. ◆역할 · 위상 미묘한 갈등
대법원과 헌재는 사법의 한 축을 담당하는 헌법기관으로,법적으로 대등한 위치다. 대법원장과 헌재소장,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은 동등한 예우를 받는다. 대법원은 사법부의 최고법원이며,헌재는 위헌법률심판 등 헌법에 관한 분쟁을 다룬다. 헌재는 그동안 호주제,동성동본금혼법,군가산점제,재외국민 참정권,간통죄,종합부동산세 등 국민의 생활에 직결되는 법률의 효력을 결정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신행정수도특별법 등 정치권에서 해결하지 못한 사안을 중재하는 등 영향력이 결코 대법원에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위상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대법원은 전체 법관 2550여명을 이끄는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 위상이 확고하다. 반면 헌재는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며,이 중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두 기관의 갈등은 1990년 헌재가 법무사법 시행 규칙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자 대법원이 "명령,규칙의 위헌심사권은 대법원에 있다"고 발표하면서 처음 표면화됐다. 1996년 양도소득세 산정기준 사건,2001년 국가배상법 사건,2009년 상속세법 사건 등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법률조항에 대해 대법원이 합헌으로 해석하면서 대립이 반복됐다.
◆역할 조정 방안은
문제는 헌법과 법률에 대해 헌재와 대법원이 달리 해석해도 조정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재판은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헌재가 취소할 수도 없다. 두 기관의 역할을 조정하는 방안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거론된다. 첫째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상의 최고법원인 대법원 위에 제4 심의 재판기관을 신설하는 결과가 돼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다. 둘째는 헌법을 고쳐 헌재와 대법원을 통합한 하나의 기관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이나 일본 최고재판소처럼 같은 기관이 상고심과 헌법재판을 모두 담당하게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유럽을 비롯해 많은 국가가 헌재를 별도로 설치하는 추세인 데다 두 기관 모두 업무가 폭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대 의견이 적지 않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 해석의 통일성을 기하고 업무 중첩에 따른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 통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법원 내에 우세하다"고 말했다. 반면 헌재 관계자는 "헌법재판기관이 일반 법원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해외 추세이고 우리나라 헌재는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며 통합론에 반대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