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육 등 '퍼주기 복지' 부메랑…국가채무 1000조엔 육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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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 日신용등급 9년 만에 강등일본의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예고된 것이었다.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매년 정부 예산을 세금수입보다 많은 빚(국채발행)으로 메워왔던 결과다.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내는 악순환이 지속된 게 일본의 재정이다. 그 배경엔 고교학비 무상화, 자녀수당 현금 지급 등 포퓰리즘적 '퍼주기 복지'가 자리잡고 있다.
금융시장 출렁
CDS금리 급등…엔화가치 급락
기업 자금조달 비용 크게 늘 듯
눈덩이 재정적자
연금 지급 축소 등 재정개혁 시급, 소비세 5%→10% 인상이 관건
일본의 신용등급 하락은 정체된 경제에 또 하나의 악재다.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일본 정부나 기업이 돈을 빌릴 때 이자를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신용등급 하향 조정 발표 직후 신용부도스와프(CDS) 금리가 뛰고 엔화 가치가 급락한 것도 그런 배경이다. ◆눈덩이 국가부채가 원인
일본 국가신용등급 강등의 직접적 원인은 급속히 불어난 국가채무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국채와 차입금,정부 단기증권을 합한 국가부채는 올 3월 말 현재 943조1062억엔(1경2700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200%에 이른다. 재정위기에 휩싸인 그리스(129%)와 아일랜드(104%)를 뺨치는 수준이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말엔 997조7098억엔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나랏빚이 1000조엔(1경3466조원)을 넘는 건 시간문제다.
경기침체로 법인세 등 세금은 많이 걷히지 않는 데 반해 고령화로 연금지급 등 사회보장비가 크게 늘어난 게 주요 요인이다. 게다가 자녀수당 신설, 고교 무상화 등으로 예산을 무분별하게 쓴 것도 국채발행을 부채질했다. 아직은 1500조엔에 달하는 개인금융자산이 국채의 90% 이상을 소화해 버티고 있긴 하다. 그러나 점점 한계가 보이고 있다. 일본의 가구당 저축액은 2009년11월 말 현재 1521만엔(2억원)으로 2004년보다 35만엔(2.2%) 감소했다. 저축액이 줄어든 건 통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개인들의 저축이 줄면 국채 매입도 줄 수 있다. 더구나 내년부터는 1947~1949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인 단카이 세대가 65세가 되면서 연금을 받기 시작한다. 재정 수요는 가파르게 늘 수밖에 없어 국채발행 속도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소비세 인상이 관건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일본 재정 악화에 대한 일종의 '옐로 카드'다. S&P도 "대규모 재정개혁을 하지 않는 한 재정 악화를 피하기 어렵다"며 간접적으로 강도높은 재정개혁을 촉구했다. 일본 정부도 추가 국채발행에 한계를 느껴 재정개혁을 준비 중이다. 간 나오토 총리는 '세금과 사회보장의 일괄 개혁'을 올해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한 상태다. 국민연금 등의 지급액을 줄이면서 세금은 인상한다는 게 기본 방향이다. 씀씀이는 줄이고 수입은 늘린다는 얘기다. 문제는 세금 인상을 국민들이 받아들이느냐다.
일본 정부는 전 국민이 보편적으로 부담하는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를 현행 5%에서 10%까지 인상할 작정이다. 소비세가 가장 안정적이고 규모가 있는 세원(稅源)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재정중시파인 자민당 출신의 요사노 가오루를 최근 경제재정담당상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재정 전문가들은 "간 총리가 정권을 내놓을 수도 있는 소비세 인상을 올해 성공시키느냐 여부가 일본 재정개혁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