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치인은 산타클로스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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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향한 탐욕이 부른 무상복지, 재원 방안 없는 사탕발림 경계를우리에게 친숙한 전래동화를 보면 '공짜 복지'라는 것이 있다. 가난했던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주자 제비는 보은하는 마음으로 박씨를 물어다 주었고 마법의 박씨를 심은 흥부는 마침내 가난을 떨쳐버리고 부자가 된다.
가난했지만 정직했던 나무꾼의 이야기도 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가서 자신의 나무 도끼를 연못에 빠뜨리고 하염없이 울자 산신령이 나타나 까닭을 묻는다. 그 후 산신령이 금도끼와 은도끼를 들고 나타나자 나무꾼은 자기 것이 아니라고 답변했다. 나무꾼의 정직함에 감동을 받은 산신령은 그 모든 도끼를 주었고 이로써 가난한 나무꾼은 일약 부자가 되었다. 이런 복지야말로 '무상복지'다.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나 산신령이 준 금도끼 · 은도끼는 글자 그대로 공짜로 하늘에서 내려온 복이다. 그러니 지상의 사람들이 수고스럽게 씨를 뿌리고 김을 매면서 일구어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 속에서도 그런 복지가 있는가. 우리가 살아오면서 터득한 진실 가운데 하나는 나누어 줄 그 무엇이 있어야 나누어 줄 수 있고 베풀어 줄 그 무엇이 있어야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 고단한 사람에게 쌀을 주고 싶어도 정작 쌀이 없으면 줄 수가 없잖은가.
오늘날 복지를 말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인들을 보면 무슨 요술쟁이인 것 같다. 급식도 공짜로 하고,보육도 공짜로 하며,의료도 공짜로 하겠다고 하니,삶에 찌든 우리 모두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공짜라는 게 있는가. 유감스럽지만 공짜는 없다. 맑은 공기가 공짜인 것 같지만 차가 붐비는 도심을 지나다보면 맑은 공기가 '희소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 물이 공짜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생수를 사먹을 때면 그것이 공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정치인들만은 '공짜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주장을 하니 딱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의 손'을 가진 것처럼 자신이 만지기만 하면 모든 것이 공짜가 되는 줄로 생각하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이 되기를 원했던 미다스 왕도 결국에는 사랑하는 공주가 황금으로 변하면서 비로소 그 탐욕의 실체를 깨닫고 파크톨로스 강에 가서 손을 씻으며 회개를 하지 않는가.
한국 정치인들의 탐욕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슨 수를 쓰든 권력을 잡고 대권을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그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무상복지다. 그러나 이것은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는 것처럼 착각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착각을 경제학적 용어로 '재정적 환상(fiscal illusion)'이라고 부른다. 재정적 환상이란,공공정책에서 나타나는 혜택에 비해 부수되는 비용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다.
그럼에도 선거 때만 되면 이 재정적 환상으로 인해 정치인들은 온갖 종류의 달콤한 선심성 공약을 내 놓는다. 수요도 없는 공항을 지은 것이 어디 한두 번인가. 무상급식,무상의료가 나왔으니 다음에는 무상아파트,무상대학교육이 나올 참이다.
무상복지가 단발성이나 이벤트성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가지려면 '재정 건전성'이 담보돼야 한다. 밑 빠진 독에 계속해서 물을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재정에 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하지 않고,무상복지의 달콤함만 말하는 정치인은 요술쟁이라기보다는 거짓말쟁이다. 진정으로 국리민복(國利民福)의 정치를 하겠다면 좀 더 정직하고 좀 더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정치인이 공짜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공짜로 복지를 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약속은 탐욕과 속물의 산물일 뿐이다. 정치인들이여,부디 권력을 얻겠다는 탐욕에서 벗어나 회개한 미다스의 왕처럼 한국형 파크톨로스 강에 가서 손을 씻을지어다.
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