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反정부 시위 격화] 통행금지령 불구 수만명 시위

일부 폭도화…박물관까지 약탈
피치, 신용전망 '부정적'으로 내려
외국인 엑소더스…美 등 특별기 투입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집트 민주화 시위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무바라크가 시위 발발 후 처음으로 29일 국영 TV를 통해 내각 해산과 개혁 추진이라는 무마책을 내놓긴 했지만 성난 민심을 달래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시위대와 이를 막아서는 경찰의 충돌로 사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아랍어 위성방송채널인 알 자지라는 이날 "이집트 경찰이 내무부 청사에 진입하려던 시위대에 발포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이집트 전역에서 일어난 시위로 최소 95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부상자는 2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했다. 로이터통신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집트 정부는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28일 오후 갑작스런 통행금지령을 내린 데 이어 29일에는 통금 시간을 오후 6시에서 4시로 두 시간 앞당겼다. 하지만 무바라크의 무조건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수도인 카이로 시내 중심가인 알 타흐리르 광장에는 수만명의 시위대가 통금 시간 이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정권퇴진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폭도로 돌변했다. 백화점과 은행 등에 대한 약탈과 방화가 이어졌다. 문화유산들로 가득한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까지 봉변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파라오의 미라 두 구가 훼손되기도 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두바이의 범아랍권 방송인 알-아라비아TV를 통해서는 카이로 인근의 파윰 지역 교도소에서 약 5000명의 수감자가 탈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카이로공항에는 수천명의 관광객이 귀국 비행기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 항공편이 무더기 취소 또는 지연됐고,카이로로 들어오던 일부 항공기는 통금 시간에 걸려 회항하기도 했다. 자국민을 보호하려는 주요 국가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관은 "31일부터 이집트를 떠나기를 원하는 미국인을 위해 국무부 차원에서 항공편을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실상 소개령을 내린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레바논 아랍에미리트(UAE) 요르단 터키 등도 자국민의 귀국을 돕기 위해 특별기를 투입키로 했다.

이집트 정국이 혼란으로 빠져들자 신용평가회사인 피치는 28일 이집트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린다고 발표했다. 신용평가회사가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면 그로부터 수개월 안에 실제로 등급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집트의 현재 신용등급은 투기등급인 'BB+'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수도 카이로를 떠나 홍해 연안의 휴양지 샤름-엘 셰이크로 피신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이날 이집트 정부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군사령부를 방문했다고 발표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