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가족관

작가 최인호씨(66)는 연작소설 '가족'에서 미국에 사는 딸과 통화하던 중 손녀가 '할아버지 보고 싶다,뽀뽀해주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성경 구절,곧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는 말이 비로소 납득됐다고 썼다.

항간에선 '손주 자랑을 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가 소용 없자 '돈을 줄 테니 하지 말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처럼 간절한 사랑에도 불구,조부모를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사람은 친가 외가 할 것 없이 25%를 넘지 못한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조사한 가족실태 조사 결과다. 배우자의 부모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답이 절반(49.5%)이고, 심지어 친부모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도 22.4%나 되니 할아버지 할머니는 더 말할 여지가 없는지 모른다. 자식만 그런 것도 아니다. 며느리와 사위를 가족으로 여긴다는 답 또한 26%와 24%에 불과했다.

'며느리를 딸로 생각하는 여자,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며느리 남편을 아직도 내 아들로 여기는 여자'는 '미친 여자'란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닌 셈이다. 뿐이랴.형제자매는 63%,배우자의 형제는 29.6%만 가족으로 여겨졌다.

한솥밥 먹는 식구가 아닌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고 본다는 얘기다. 가족은 '배우자,직계 혈족 및 형제자매와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를 모두 포함한다'는 친족법 조항이 무색할 지경이다. 가족관이 이처럼 달라진 이유는 도시화에 따른 핵가족 증대와 경제적 문제 탓이라고 한다. 만나지 않으니 정도 없고,정이 없으니 가족이란 마음도 들지 않는데다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서로를 부담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자연히 어쩌다 만나도 서먹하기 일쑤다.

이러니 명절 스트레스란 말이 나온다. 가족관이 바뀌면 상대에 대한 보살핌이나 책임도 그만큼 덜해진다. 국가가 모든 것을 떠안아야 된다는 말이다. 가족이기주의라는 부정적 요소도 있지만 가족은 개인을 보호하고 사회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가족의 중심은 부부다.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면 상대의 가족에 대한 배려도 그만큼 커진다. '다시 결혼할 의향이 있느냐'에 남성은 50.6%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30.5%만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왜 그런지 알면 가족의 범위가 늘어날지도 모른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