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동에 번진 풀뿌리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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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세습 시도가 국민분노 야기새해 들어 아랍권이 들썩이고 있다. 북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민혁명은 아랍권 여러 국가로 확산하고 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웃나라 알제리와 이집트, 그리고 예멘,수단,팔레스타인 등은 물론 왕정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 아랍의 독재정권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까지 나온다.
장기화 대비속 교민보호 우선을
특히 지난 수일간 중동의 최대 정치 강국 이집트의 상황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30년을 통치해온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으로서는 최대위기를 맞은 셈이다. 시위대와 정부당국이 충돌하면서 이미 1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수천 명이 다쳤다.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된다면 중동의 정세는 대변혁을 맞이할 것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아랍권 드라마와 영화의 90% 이상을 공급해 온 문화대국 이집트는 중동 전역의 이념적 학문적,그리고 문화적 토대를 구축해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다른 공화정은 물론 산유국이 대부분인 왕정체제에까지 큰 위협요소가 될 것이다.
이번 아랍권 민주화 열풍의 근본적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기간의 독재와 억압,기득권층의 부패,물가상승으로 인한 생활고가 주된 원인이다. 아랍권은 '죽어야 바뀌는 정권'이라 불릴 정도로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왕정은 차치하고 공화정에서도 군부를 등에 업은 독재자가 수십년간 집권해 왔다.
그러나 주민들의 가장 큰 분노를 사는 부분은 정권세습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왕정국가에서는 당연하듯 아들이나 형제가 왕위를 물려받고 있다.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공화정임에도 불구하고 시리아에서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이미 아들이 아버지에 이어 대통령직을 수행 중이다. 이집트,예멘,리비아 등에서도 권력세습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이집트의 경우 2004년 차남 가말에게 권력이양설이 제기되면서,'키파야(Kifaya · 이제 그만 충분해!)' 세습반대 운동이 이미 거세게 일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더딘 민주화를 보여주던 곳이 바로 중동이다. 이곳에서 세습을 반대하는 풀뿌리 시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상 생활에 파고든 21세기에 권력의 대물림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겠다는 인류의 인식을 반영한다. 이런 점에서 북한에서의 3대 세습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란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북한의 정권 붕괴에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도 겪어온 민주화 과정이기에,또 북한의 3대 세습과 북한 주민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기에 우리는 이번 아랍의 민주화 노력에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튀니지의 경우 대통령이 축출됐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집트 등 다른 국가에서도 유혈사태와 더불어 약탈 등 무정부 상태가 발생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 주말부터 이번 사태는 중동은 물론 미국과 유럽 증시에도 악영향을 주는 상황이다. 장기화할 이번 중동의 민주화 사태에 대비해 정부는 교민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각국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여행 제한,교민 소개(疏開) 등의 조치를 제때 취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도 안전조치를 취하고 상황에 따른 적절한 사업계획을 추진해야 함은 물론이다. 중동은 우리의 최대 에너지 공급처이자 최대 플랜트 수주지역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약 400억달러에 달하는 플랜트 사업을 계약했다. 우리의 무역 및 경제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안전을 추구하는 정부와 기업의 신중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정민 < 한국외대 교수·중동아프리카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