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본가 이틀" vs "친정 빨리" 살벌한 신경전…차라리 해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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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연휴 보내는 법김 과장은 얼마 전까지 머리가 복잡했다. 이번 설 연휴는 수 · 목 · 금요일 3일.주말까지 합치면 5일이다. 다른 때보다 길어 귀향길이 여유로울 듯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시댁에 설 전날인 수요일에 얼굴만 비치고 3박4일 동남아여행을 가자는 게 아내의 제안이었다. 큰아들 중학교 입학기념이라는 명분도 달았다. 모처럼 3~4일 동안 시골에 머물며 못 만난 사람을 만나겠다는 김 과장의 생각은 진작부터 빗나갔다.
해외출장의 비밀
"결혼은 언제…" "아이는 언제…"…무서운 잔소리 피해 가짜 출장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실험실 근무 "세포는 계속 자라고"…중동거래 담당 "얘들은 설 없으니"
37세 노처녀인 이 대리는 몇 년 전부터 시골에 가지 않는다. 고향에 가서 어른들로부터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타박성 질문을 듣기 싫어서다. 이번 설에도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해외여행 계획을 잡았다. 이런 생활이 몇 년 계속되면서 부모님도 이해해 주시는 분위기다.
◆본가 · 처가 실랑이는 영원한 숙제
지난해 3월 결혼한 김모 대리(32)는 작년 추석을 지내고 아내와 대판 싸웠다. 당초엔 추석 당일 본가에서 차례를 지내고 오후에 처가로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점심을 먹자마자 가족들(아내의 시누이들)이 몰려왔다. 아내는 이들의 뒷수발을 한참이나 들어야 했다. 결국 아내는 "시누이들도 누군가의 며느리일텐데 그들은 당일에 오고 나만 이게 뭐냐"며 불만이 폭발했다.
김 대리는 이번 설엔 전략을 달리하기로 했다. 김 대리는 '명절 당일은 본가에서 지내되 처가에 이틀 머물자'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아내는 떨떠름해 하면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결혼 3년차인 강모씨(여 · 30)도 명절 때마다 시댁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다. 시부모님이 시누이가 친정에 올 때까지 아들 부부가 시댁에 있어줬으면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외동딸인 강씨를 멀리 시집보낸 친정 부모님이다. 친정 부모님이 사는 곳까지 걸리는 시간은 차가 안 막힌다는 전제 아래 4시간,왕복 8시간이다. 그래서 명절 연휴가 짧은 때는 전날부터 남편 옆구리를 쿡쿡 찌르고 당일에는 시계만 쳐다보다 시간이 너무 늦어 결국 친정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강씨는 "시댁에서 연휴를 보낼 때는 친정 부모님이 눈에 밟히곤 해서 부부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있었다"며 "이번 연휴에는 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해 친정에서 하룻밤 자고 주말에 올라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박모 과장(34)은 올 설 연휴를 일본에서 보낸다. 작년에 결혼한 신혼부부인 박 과장은 '도쿄~도쿄~' 노래를 부르는 부인 소원을 들어주기로 작심하고 장인 · 장모까지 모시고 다녀오기로 했다. 문제는 설 연휴에 장남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된 본가 부모님들.박 과장은 "죄송한 마음에 친구들과 설악산에 부부동반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라고 '급'을 낮춰 말씀드렸다"며 "휴대폰으로 전화했을 때 로밍 메시지가 나오지 않게 하는 등 신경 쓸 게 많아졌다"고 말했다. ◆해외출장 · 당직으로 '도피'
대기업에 다니는 장모 과장(39)은 올 설에 유럽 출장이 잡혔다고 가족에게 통보했다. 물론 가짜 해외 출장이다. 어느덧 노총각 대열에 들어선 장 과장이 추석 · 설 등 연휴 때마다 애용하는 알리바이다.
노총각 노처녀 직장인들의 설연휴 공포는 뭐니뭐니해도 친척들의 무서운 관심이다. "결혼은 언제 하니","부모님 속 그만 썩여라" 등 한마디 한마디가 가시방석이다. 아예 해외 출장 핑계를 대고 친척 행사에 참석하지 말자고 마음 먹은 것도 이런 이유다. 대형 유통업체에 다니는 박모 과장(35 · 여)은 작년 설을 쇤 후 응급실에 실려갔다. 남편은 경북 안동에 있는 '뼈대 있는 집안'의 종손이다. 차례상 차리기부터 손님 대접하는게 보통 일이 아니다. "알아서 쉬라"는 게 시어머니의 배려지만,종갓집 며느리에겐 그럴 틈이 없다. 박 과장은 결국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응급실에 실려가야 했다.
박 과장에게 올 설은 다를 것 같다. 그는 회사에서 연휴 당직을 자처했다. 당직을 맡게 된 미혼 후배에겐 "명절에도 나오기 힘들지? 언니가 대신 서줄게.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라며 선심을 썼다. 그는 "시댁에는 설 당직이 걸려 어쩔 수 없이 못 내려간다고 핑계를 댔다"며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지키는 게 훨씬 속 편하다"고 귀띔했다.
◆가족 보러…선 보러…지금 갑니다
기나긴 설 연휴를 활용해서 그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개인 업무를 처리하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소프트웨어업체 영업사원인 한모 차장(42)은 올 설에 고향인 청주행 고속버스 대신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다. 아내와 초등학생 두 딸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는 올해로 2년차 '기러기 아빠'다. 회사 눈칫밥을 먹어가면서까지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간 휴가를 내 9일 휴가를 만들어 냈다. 그는 "초기에는 스카이프로 거의 매일 두 딸 및 아내와 화상통화를 했는데,2년째 접어들면서 전화가 걸려오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며 "자꾸만 가족들이랑 멀어지는 것 같고 아내도 내 존재감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아 무리를 해서라도 가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서 출판업체에 다니는 서모씨(28 · 여)는 고향이 제주도다. 그는 이번 설에 내려가서 부모님과 친척들이 추천한 제주도 남성들과 수차례 선을 볼 예정이다. 그는 "동향 사람들을 만나기에 제일 좋은 시기는 역시 고향에 모이게 되는 명절"이라며 "매번 주말을 소개팅에 헌납하느니 아예 명절에 하루 이틀 몰아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 서로 편하고 좋다"고 설명했다.
◆"나도 집에 가고 싶다"
서울 구로동의 한 바이오업체에 다니는 손모 대리(31)는 설 연휴가 조금도 반갑지 않다. 자동차로 두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강원도 원주가 고향이지만 연휴 기간 사무실을 지켜야 해서다. 설 당직을 도맡아 선 게 벌써 3년째다. 회사가 올해도 신입사원을 뽑지 않아 막내가 하는 명절 당직은 또 그의 차지가 됐다.
세포배양기를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먹이도 줘야 하는 실험실 관리 당번이 그가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은 쉬지만 시시각각 자라나는 세포들에게 휴일이 있을리 만무하다.
연휴기간 긴급한 일처리를 도맡는 것도 막내들의 몫이다. 중동 국가와 거래하는 대기업 계열사의 3년차 안모씨(27 · 여)는 작년 설을 '악몽'으로 기억한다. 중동 사람들은 한국의 설 연휴를 알지 못하는 탓에 팀원들이 돌아가며 근무해야 하는데,선배들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일을 모두 안씨에게 떠밀었기 때문이다. 안씨는 "중요한 거래선이라 연휴를 이유로 업무를 중단할 수도 없고 그저 '압둘라씨 미워요'라고 중얼대는 수밖에 없었다"고 투덜댔다.
이상은/이관우/이정호/이고운/강유현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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