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정국 '혼돈'] 1600여개 수출中企 "대금 회수 불투명" 속만 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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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태 장기화 땐 피해 클 듯
LG전자 TV공장 스톱 등 현지 진출 기업 정상영업 포기
"최대한 빨리 카이로 탈출" 직원ㆍ가족 긴급 대피책 마련
"지난 28일부터 카이로 현지 바이어와의 이메일이 딱 끊겼습니다. 주문 맞추려고 구입한 원자재가 수억원어치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 이집트에 폴리에스터 직물을 수출하는 A사 사장은 입안이 바싹 타들어가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수출 대금을 제대로 회수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집트 시위 및 소요사태가 확산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경계 수위도 차츰 높아지고 있다. LG전자는 카이로 소재 TV 생산공장 가동을 멈췄고,34개 현지 진출 기업 대부분이 정상 영업을 포기한 채 직원과 가족들의 대피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1600여개 수출 중소기업들엔 대금 회수 문제가 급선무로 떠올랐다. ◆카이로 탈출 러시
카이로 현지에 생산 · 판매법인을 운영 중인 LG전자는 직원 가족 28명을 전세기편으로 영국을 경유해 귀국시키기로 했다. 삼성전자도 직원 가족 전원을 서울로 대피시키기로 결정했다. 현대자동차는 경계령을 한 단계 높여 직원들도 두바이 지역본부로 전원 철수시켰다. 포스코 OCI 한산실업 등 현지 진출 기업 대부분이 직원과 가족들의 대피 절차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실제 현지에 30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정상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직원들 상당수가 출근을 안 하고 있는 탓이다. 노철 KOTRA 카이로센터장은 "LG전자를 비롯해 폴리에스터 직물을 생산하는 마이다스도 공장 가동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7년 20억달러 규모의 ERC 수첨분해 프로젝트를 수주한 GS건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GS건설 관계자는 "이제 기본설계를 끝냈고,내년쯤에 현장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파이낸싱도 끝난 상황이어서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 중소기업들 역시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건설 중장비를 수출하는 B사 관계자는 "관공서가 모두 문을 닫는 바람에 통관업무가 중단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용석 KOTRA 중아CIS팀장은 "사태가 지난 주말 예상보다 빠르게 악화된 데다 인터넷까지 차단되면서 많은 수출기업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기업이 현지 바이어와 사전에 생산 일정을 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출 대금 회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기화 조짐에 촉각전문가들은 당장의 피해보다는 이집트가 북동부 아프리카 지역 전략의 핵심 거점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한 · 이집트 양국 간 무역 규모는 31억달러로 미미했지만 대기업들은 향후 북아프리카 지역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근 1~2년 사이 잇달아 이집트에 거점을 마련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영업은 두바이에서 총괄해 왔지만 2007년 말 카이로로 지역 사령탑을 옮겼다. 아프리카 자원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는 포스코가 작년 초 카이로에 사무소를 개설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김 팀장은 "이집트는 지중해와 홍해를 끼고 있는 북동부 아프리카의 요충지"라며 "제조 기반과 각종 인프라 측면에서 이집트만한 대안이 없다"고 설명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집트가 이슬람 근본주의로 흘러 국수주의 정책을 펴지만 않는다면 이집트와의 경제 교류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위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집트 정부는 작년 초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대대적인 행정서비스 개편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원숍(one-shop) 서비스'가 대표적인 예로 투자를 희망하는 외국 기업이 투자유치청에 찾아가면 다른 부처에 가지 않고도 한자리에서 모든 민원을 해결해 주는 제도다.
박동휘/이정선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