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2대 악재'] 달러·엔화·금값 '들썩'…신흥국 자금유출 가능성

일부국가 통화가치 하락, 안전자산 선호현상 재연 우려
주변 중동國 시위 확산 땐 국제유가 불안 불보듯
이집트 사태로 지정학적 위기가 불거지면서 최근 급격히 퇴조했던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다시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 이머징 국가에 몰렸던 자금들이 미국 등 선진국으로 되돌아가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머징 국가들은 경제 성장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근래 투자 매력이 급격히 떨어진 터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집트 사태가 인근 중동 국가로 확산돼 국제유가가 급등하면 신흥국들은 자금 유출에 따른 통화가치 하락 속에 유가 상승까지 겹쳐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동시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위험 자산 '선호에서 회피로' 전환이머징 국가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 투자자들은 적극적으로 위험을 선호하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곳을 찾아나섰다. 이머징 국가에 근래 자금이 계속 유입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머징 국가는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고 미국 유럽보다 성장 속도가 빨라 투자 매력이 그만큼 컸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 이집트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면서 일단 안전자산에 돈을 옮겨놓으려는 움직임이 가속될 전망이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의 그레그 깁스 외환투자전략가는 마켓워치에 "이집트의 경제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수에즈운하를 통한 석유 공급 차질 우려로 위험(리스크) 회피 현상이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31일 외환시장이 열리자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 달러,스위스 프랑,일본 엔의 가치가 급등한 것도 이 같은 투자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금 투자 재개 움직임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올 들어 5% 이상 떨어졌던 금값도 오름세로 돌아섰다. 금 4월물 가격은 지난 28일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온스당 21.90달러(1.7%) 오른 1341.70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4일 이후 12주일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31일에도 금값 상승세는 이어져 금 현물의 경우 아시아시장에서 온스당 1342.68달러까지 올랐다. 시카고 소재 라살레선물그룹 매튜 제먼 금속트레이더는 "금값 반등은 이집트 혼란과 관련이 있다"며 "투자자들은 일단 안전 자산에 투자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금값 상승이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란 반론도 있다. 왕 타오 로이터 시장애널리스트는 "지난 주말의 금값 급등은 하락 과정에서 일종의 조정"이라며 "금 현물의 경우 온스당 1348달러까지 반등한 후 다시 1320달러 수준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흥국, 자금유출 비상이머징 국가에서 돈이 빠져나오면서 일부 국가들은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인도 루피화 가치는 작년 11월 초 이후 미 달러 대비 4% 하락했다. 가뜩이나 국제 식량 가격이 뜀박질하면서 인플레이션 공포가 커진 가운데 외국 자본 유출로 통화가치까지 떨어진 것이다.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물가 상승 부담은 더 커진다. 지난주 인도 통화당국은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등 대책을 마련했지만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인도는 올 들어 주가도 10% 이상 빠지면서 시장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인도네시아도 자금 유출로 지난 한 달 새 채권가격이 평균 5%가량 하락했다. 이머징 국가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자 루비니글로벌이코노믹스는 투자자들에게 올 상반기 중 아시아 각국의 현지 통화 채권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박성완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