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처벌 없는 차명계좌…비자금 조성 '단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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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그룹 7000개 관리… 이호진 회장 구속기소차명계좌가 또 문제였다. 검찰의 태광그룹 수사에서 차명계좌 7000개가 등장했다. 최근 수사결과가 발표된 신한금융그룹과 한화그룹 사건에서도 차명계좌가 불거졌다. "차명계좌,너 누구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출현 빈도수가 높다. 태광그룹과 한화그룹을 수사한 봉욱 서울서부지검 차장검사는 "큰 사건일수록 차명계좌는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고 말했다.
은행 직원에만 과태료 부과…실명제法 개정 시간만 끌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해"서울서부지검은 태광그룹 비자금 혐의 등에 대한 수사 결과를 31일 발표했다. 4개월간 수사한 검찰은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을 1491억원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이 회장의 모친인 이선애 태광그룹 상무와 이성배 TRM · THM 대표,오용일 그룹 부회장,박명석 대한화섬 대표 등 5명을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회장 등은 △계열사인 태광산업과 태광관광개발에서 무자료 거래 등으로 536억원을 횡령하고 △계열사의 한국도서보급 주식 및 골프연습장을 사주에게 저가 매각하고 이 회장 소유 골프장 건설업체에 무담보 대출로 약 955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발표내용 중 핵심 혐의는 차명계좌를 통한 자금 관리.검찰은 이 회장이 7000여개에 달하는 차명계좌로 4400억원을 운용했다고 밝혔다. 이 중 1923억원을 세금 납부 및 유상증자 대금으로 썼고,2300억원을 차명주식과 차명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임직원 명의 400여개가 동원됐다. 차명계좌 문제는 비단 태광그룹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화그룹 사건에서 검찰은 차명계좌 382개가 발견됐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의 신한은행 수사에서도 라응찬 전 회장이 1999~2007년 재일교포 4명의 명의로 차명계좌를 운용하면서 204억여원을 관리한 혐의로 조사받기도 했다.
◆"차명계좌 있는지도 모른다"
차명계좌는 본인의 동의가 있거나 없이도 만들어진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수십 개의 막도장이 발견되는 이유다. 명의자 본인은 이 때문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차명계좌가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은행이 별도로 명의자에게 통보를 해주지 않아 차명계좌는 장기간 존재할 수 있는 구조다. 검찰 관계자는 "차명계좌주들에게 과세가 될 경우에는 회사 차원에서 대납해주고,통장 등은 회사에서 관리한다"면서 "수사 과정에서 일부 차명계좌주들은 '내가 회사 핵심부서의 신뢰를 받는구나'라며 차명계좌를 출세의 징표로 반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형사처벌 조항 없어
현행법상 차명계좌 개설 자체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없다. 은행 등 금융기관 직원이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차명계좌를 개설했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정도다. 문일봉 율촌 변호사는 "현행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서는 차명계좌의 이자소득에 대해 90%를 세금으로 물리는 정도가 그나마 규제 사항"이라고 말했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명의신탁재산을 증여한 것으로 간주하고 증여세를 부과하는 45조의 2 조항이 있지만 등기를 요하는 선박이나 주식,사채 등에만 적용되고 예금이나 적금,펀드는 해당되지 않는다.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이와 관련,지난해 10월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차명계좌에 증여세를 부과하도록 의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실명제법 보완 등 관계부처 간 협의를 통해 진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해 재정부에서 법적 제재 강화를 추진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재정부 관계자는 "금융위원회에서 대략적인 안을 만들어 가져오면 관계부처 간 협의를 시작할 계획인데 아직 금융위에서 안을 안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이고운/임도원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