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40년 전 그 사건, 정말 벌어진 일일까

보이지 않는 | 폴 오스터 지음 |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333쪽 | 1만800원
유럽 시인들을 좋아하는 문학청년이자 컬럼비아대 2학년생인 워커.그는 1967년 봄 우연히 방문교수로 온 30대 후반의 프랑스인 보른을 만난다. 묘한 '악마적 매력'을 지닌 보른은 베트남 전쟁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워커에게 고급 문학잡지 창간 사업을 제시한다. 이를 받아들인 워커는 보른의 은근한 부추김 속에 그의 연인인 마고와 육체적 격정에 휩싸인다.

그러던 중 함께 강변을 산책하다 보른이 10대 흑인 강도를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침묵을 강요받은 워커는 심한 자괴감에 괴로워하다 뒤늦게 경찰에 신고하지만 보른은 이미 파리로 떠나버린 뒤다. 미국 대표 작가 폴 오스터의 신작 《보이지 않는(원제:Invisible)》은 기묘하고 관능적인 소설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1967년 한 청년의 경험과 40년 후 그가 당시를 회상하며 회고록을 쓰는 과정이 큰 줄거리다. 유명 작가가 된 그의 대학 동기생 짐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워커의 회고록 집필을 돕는다.

워커는 그해 여름 운 좋게도 다리를 다쳐 베트남전 징집을 면제받는다. 그는 1년 간 파리에서 유학할 수 있는 연수 과정을 신청해 가을에 떠나기로 한다. 여름내 친누나 그윈과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다 욕정에 사로잡혀 금지된 관계에 빠지고 만다. 그 후 파리에서는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보른과 그의 새 약혼녀 엘렌 모녀,마고 등과 재회한다. 우연과 무작위적인 사건들이 한 개인과 주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개인의 정체성,부조리와 실존주의,범죄 추리 등의 주제와 형식을 다양하게 실험해 온 작가가 이번에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 '이야기(언어)'로 묘사한 현실과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현실을 대비시킨다.

회고록이나 일기,편지 등 언어를 통해 되살린 현실은 결국 서술자의 인식에 기반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진짜 현실'이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져오는 것이다.

워커는 회고록을 '봄''여름''가을'로 나누고 각각 1인칭,2인칭,3인칭 시점으로 기술한다. 그의 표현대로 '혐오스럽고 구역질 나는' 과거 속의 자신과 거리감을 두는 방법이다. 소설은 종반으로 갈수록 작품 전체의 진실성을 의심받을 정도로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모호해진다. 그윈은 금기를 넘어선 남매의 관계가 죽음을 앞둔 워커의 무의식적 욕망에서 비롯된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워커가 털어놓은 1967년의 일들은 모두 사실일까.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