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反정부 시위 격화] 인근 산유국으로 시위 확산땐 '석유파동' 배제못해

국제유가 '이집트 쇼크'
국제 유가가 '이집트 쇼크' 직격탄을 맞았다. 예상보다 빨리 배럴당 100달러 선을 돌파하면서 글로벌 산업계에 '경보음'을 울렸다. 유가 급등은 생활물가 상승은 물론 산업계 전반에 원가부담 압박을 가중시키는 악재다. 특히 두바이유 가격 상승은 국내 산업에 직접적인 부담이다. 국내 원유 소비 가운데 80%를 두바이유가 차지하고 있다. 국제 유가가 10% 오르면 국내 소비자물가는 0.2%포인트 높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원유가격은 2008년 12월 배럴당 33달러대로 저점을 찍은 이후 등락을 거듭하면서 지난 2년여 동안 3배가량 올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이 같은 상승세가 한층 가팔라졌다. 기업 실적 개선 등 미국 경기에 회복조짐이 나타난 데다,유로존 재정 위기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드는 등 글로벌 경제를 짓눌렀던 양대 리스크가 줄어든 것이 주요한 배경이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지난해 12월 미국 소비지출은 전월에 비해 0.7% 증가해 여섯 달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또 미국 시카고 지역 제조업 경기를 나타내는 시카고 구매관리자지수(PMI)도 16개월 연속 확장세를 보였다. 이 같은 경기호조에다 전 세계적인 한파와 원유 유출 사고,신흥국 수요 증가도 유가 상승에 불을 붙인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 사태다. 시장분석 매체인 마켓워치는 "이집트 시위 사태가 8일째 이어지고 있지만,언제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이 물량 선확보와 투기 수요를 동시에 부추겼다"고 진단했다.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로 오가는 유조선도 많지만 카이로 인근에는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하루 수송량 100만배럴의 수메드 송유관이 설치돼 있다.

국제 원유 시장은 특히 정치 · 경제 구조가 비슷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 등 인근 산유국으로 시위사태가 확산될 경우를 주목하고 있다. 원유가가 일시에 2~3배로 폭등했던 1970년대의 석유파동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시장의 걱정이다.무바라크 대통령이 야권과의 대타협에 성공해 조기에 사태가 수습될 경우 급락도 배제할 수 없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 여부도 주요 변수 중 하나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리 알 누아이미 석유장관은 이날 제네바 세계원자재포럼에 참석해 "사우디는 하루 400만배럴의 증산이 가능하다"며 "원유 적정가격을 배럴당 70~80달러로 보는 만큼 석유 공급이 모자라는 일이 없도록 약속한다"고 말해 가격 조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집트 변수가 해결돼도 중장기적으로는 강세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무엇보다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OPEC에 따르면,현재 전 세계 원유 평균 소비량은 2~3년 전에 비해 하루 280만배럴이 늘어난 8780만배럴로 추산된다. 아담 시민스키 도이체방크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지역의 긴축기조, 중국의 경제 성장 속도조절 등을 감안할 때 국제 유가는 이집트 변수 해소 이후에도 당분간 100달러 선에서 오르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