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埸 마감직전 대량 매수·매도는 시세조종"

2004년 한미銀 주식 거래 공방
법원, 대한전선·도이치證 유죄
'11·11 옵션쇼크' 책임 관련 주목
200억원이 넘는 장외파생상품 계약의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6초의 주가전쟁'을 벌인 대한전선과 도이치증권 직원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동시호가 시간에 집중적으로 매수 · 매도 주문을 낸 것은 인위적인 시세조종에 해당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이번 판단은 도이치뱅크가 지난해 일으킨 '11 · 11 옵션쇼크'에 대한 형사책임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부장판사 조한창)는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 도이치증권 상무 손모씨(47)와 전 대한전선 자금팀장 전모씨(48)에게 징역 2년6월과 2년,각각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손씨와 전씨는 주식의 대량 매수 · 매도 주문이 헤지를 위한 거래 또는 공매도를 청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일련의 주문은 주가를 녹아웃(knock out) 가격보다 높게,또는 낮게 변동시킬 의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파생상품 시장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확대됨에 따라 금융사들이 대량의 자금을 동원해 시세를 인위적으로 조종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며 "시세조종 행위를 엄중히 처벌해 주식시장의 건전성을 도모할 필요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법원의 이 같은 해석은 옵션 등 파생상품 시장에서 흔히 행해지는 대량매도 · 매수가 시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범법행위라고 본 것이어서 파생상품 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낳을 전망이다.

양측의 분쟁은 2003년 4월 맺은 옵션계약에서 비롯됐다. 대한전선은 보유 중인 한미은행(현 씨티은행) 주식 285만여주를 226억여원(주당 7930원)에 도이치뱅크에 팔면서 판 가격대로 다시 사올 수 있는 '콜옵션'계약을 맺었다. 대신 1년 안에 주가가 행사가격의 두 배인 1만5784원을 넘으면 콜옵션이 종료되는 '녹아웃' 조건을 달았다. 이후 씨티은행의 인수설이 퍼지면서 한미은행 주가는 뛰기 시작해 이듬해 2월 녹아웃 가격에 근접했다. 대한전선은 콜옵션을 행사하지 못하고,도이치뱅크만 200여억원의 이익을 챙길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주가전쟁은 2004년 2월19일 벌어졌다. 도이치뱅크의 증권거래를 맡은 도이치증권의 손씨는 장 마감을 10여분 앞두고 16만주를 1만5800원에 사겠다고 주문을 냈다. 그러자 예상체결가는 마지노선인 1만5784원을 웃도는 1만5800원으로 올랐다. 화들짝 놀란 대한전선 측은 반격에 나섰다. 9분40초가 지난 뒤 35만주의 매도주문을 내 1만5300원으로 끌어내렸다. 그러나 6초 후 이번에는 도이치증권이 다시 93만주의 매수 주문을 냈고,결국 종가는 1만5800원으로 마감했다.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 대한전선은 이의를 제기했고 검찰은 이들을 지난해 1월 불구속 기소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 소송에서 금융감독원의 강제조사가 불법이라고 판단,금감원의 조사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금감원이 전씨를 출석시키거나 전화통화 등으로 조사한 것은 권한이 없는 기관의 수사행위"라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