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명동

서 있기도 힘들었다. 설 이튿날,서울 명동 거리는 걷는다기보다 떠밀려간다고 해야 할 만큼 인파로 가득했다. 설을 쇠고 나들이 나온 젊은 남녀는 물론 춘제(春節 · 설)를 맞아 여행 온 중국 관광객에 일본 관광객까지 뒤섞여 조금만 멈칫거리면 몸이 부딪칠 정도였다.

이름 덕일까,명동(明洞)은 늘 번화하다. 서울의 주요 상권이 강남으로 옮겨간 지금도 여전히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것만 봐도 그렇다. 면적은 넓지 않다. 을지로 입구에서 지하철 명동역까지인 남북과 롯데백화점 건너편에서 명동성당에 이르는 동서 축 모두 300m 정도다. 한국 가톨릭의 본산인 명동성당을 비롯해 은행회관과 대한YWCA,유네스코회관 등 상징적 장소가 있지만 대부분은 상가,그것도 화장품과 의류 점포다. 하루 유동인구 150만명,일본과 중국의 연휴 때면 이들 여행객이 20%를 넘는다는 마당이다. 이번 연휴에도 중국인들로 북적거렸다.

관광객은 넘치는데 백화점이 문을 닫으니 명동 상가는 대목인 듯했다. 화장품과 잡화,의류 매장 상당수는 설날에도 문을 열었다고 했다. 노점상은 더했다. 남북과 동서 중앙로 할 것 없이 장갑 모자 스카프 액세서리 벨트 양말 같은 잡화나 의류를 파는 이들과 오뎅 오징어 핫바 등 간식거리를 파는 이들로 빼곡했다.

유례없이 긴 연휴 덕에 3100만명이 고향을 찾고 외국으로 떠난 사람만 34만명이었다지만 명동을 터전으로 삶을 꾸리는 이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던 셈이다. 설 연휴 내내 우울했던 이들이 있을 것이다. 대학입시에 떨어져서,취업이 안돼서,구조조정 당해서 등.앞이 캄캄하다 싶으면 벌떡 일어나 명동에 한번 나가볼 일이다. 찬바람 부는 거리에 앉아 뽑기를 만드는 할머니,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목청 높여 손님을 부르는 점원,부지런히 오징어를 굽고 떡볶이를 나르는 청년 등.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 애쓰는 그들을 보면 살아봐야겠다 싶어질지 모른다. 어릴 때 결핵으로 다리를 잃고 어른이 돼서도 온갖 병에 시달렸던 영국 시인 윌리엄 E 헨리의 시'굴하지 않는다'도 있으니.

'온 세상이 지옥처럼 캄캄하게/ 나를 엄습하는 밤에/ 나는 어떤 신이든,신에게 감사한다/ 내게 굴하지 않는 영혼 주셨음을./생활의 그악스런 손아귀에서도/ 난 신음하거나 소리내 울지 않았다/…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요/ 내 영혼의 선장인 것을.'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