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실리콘밸리를 꿈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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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실리콘밸리는 모든 나라가 벤치마킹하고 싶어하는 곳이다. 그러나 미국 밖에서는 실리콘밸리가 좀처럼 재현되지 않고 있다. 정부(관) 주도에 익숙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인위적인 밸리 조성에 나서기도 했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왜 그런지 그 이유는 학자들의 좋은 연구 소재가 됐다. 어떤 학자는 물리적인 시설이 아니라 실리콘밸리를 돌아가게 하는 혁신의 생태계나 문화적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또 어떤 학자는 영어라는 국제 공용어,이민을 통한 새로운 인력의 수혈,그리고 혁신을 지원할 수 있는 금융환경의 역할이 컸다며,다른 나라들은 이를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에 대한 환상을 접으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흥미로운 가설도 등장했다. 미국에서 실리콘밸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정치 중심지인 동부의 워싱턴 DC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런 범주에 해당한다. 뒤집어 말하면 지원이 됐건,규제가 됐건 정부가 시시콜콜 간섭이나 하고 툭하면 정치적 쟁점이 되는 그런 곳이었다면,과연 오늘의 실리콘밸리가 탄생할 수 있었겠느냐는 얘기다. 과학벨트 때문에 온나라가 시끄럽다. 기초과학을 육성하자는 구상에서 나온 과학벨트가 정치적 의도에서 출발한 세종시 굴레를 결국 못 벗어난 채 정치화되고 만 형국이다. 과학벨트의 본질은 온데간데없이 실종되고 오직 우리 지역으로 오느냐 마느냐에만 지역과 정치인들이 혈안이 돼 있다.
과연 과학벨트가 내 지역으로 들어오면 실리콘밸리가 금방 눈앞에 펼쳐지기라도 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과학벨트를 매개로 세종시,오송(의료복합단지),그리고 대덕을 묶어 실리콘밸리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은,정치적으로는 통할지 몰라도 현실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수십년 된 연구단지 대덕조차 아직 혁신의 생태계가 미흡한데,세종시가 과연 성공할지,오송은 또 제대로 된 의료복합단지가 될 수 있을지 모든 게 불투명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지도에 선을 마음대로 그어 곧바로 실리콘밸리가 튀어나온다면 어느 나라인들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충청권만 비난할 일도 아니다. 다른 지역 정치인들도 다를 바 없다. 대덕연구단지가 연구특구로 지정되자 호남권 영남권 정치인들은 한통속이 돼 대구 광주도 연구특구로 해달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그리되면 대덕~대구~광주를 잇는 삼각벨트가 된다는 주장이었다. 또 하나의 정치적 실리콘밸리는 이렇게 탄생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실리콘밸리가 될 거라며 밸리,벨트,클러스터,특구 등 온갖 현란한 이름을 내건 곳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정치인들의 이런 논리때문에 과학기술 인력체계도 헝클어졌다. 대덕에 KAIST가 있는데 광주 대구에는 왜 없느냐는 식으로 해당 지역 정치인들은 밀어붙이기만 했다. 국가 과학기술 인력 양성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는 그들의 관심 밖이 된 지 오래다. 이공계 인력의 양적,질적 위기가 그냥 온 게 아니다.
이건 과학벨트가 아니라 정치벨트다. 영어,이민,혁신적 금융 같은 실리콘밸리의 고유한 성공 요소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개방과는 거리가 먼 폐쇄성,공정한 경쟁보다 정치적 해법을 우선하는 행태,협력은커녕 적대적 편가르기가 판치는 분위기 속에서 실리콘밸리를 꿈꾼다고? 정치적 포퓰리즘과 지역 이기주의가 과학기술마저 망치고 있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왜 그런지 그 이유는 학자들의 좋은 연구 소재가 됐다. 어떤 학자는 물리적인 시설이 아니라 실리콘밸리를 돌아가게 하는 혁신의 생태계나 문화적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또 어떤 학자는 영어라는 국제 공용어,이민을 통한 새로운 인력의 수혈,그리고 혁신을 지원할 수 있는 금융환경의 역할이 컸다며,다른 나라들은 이를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에 대한 환상을 접으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흥미로운 가설도 등장했다. 미국에서 실리콘밸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정치 중심지인 동부의 워싱턴 DC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그런 범주에 해당한다. 뒤집어 말하면 지원이 됐건,규제가 됐건 정부가 시시콜콜 간섭이나 하고 툭하면 정치적 쟁점이 되는 그런 곳이었다면,과연 오늘의 실리콘밸리가 탄생할 수 있었겠느냐는 얘기다. 과학벨트 때문에 온나라가 시끄럽다. 기초과학을 육성하자는 구상에서 나온 과학벨트가 정치적 의도에서 출발한 세종시 굴레를 결국 못 벗어난 채 정치화되고 만 형국이다. 과학벨트의 본질은 온데간데없이 실종되고 오직 우리 지역으로 오느냐 마느냐에만 지역과 정치인들이 혈안이 돼 있다.
과연 과학벨트가 내 지역으로 들어오면 실리콘밸리가 금방 눈앞에 펼쳐지기라도 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과학벨트를 매개로 세종시,오송(의료복합단지),그리고 대덕을 묶어 실리콘밸리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은,정치적으로는 통할지 몰라도 현실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수십년 된 연구단지 대덕조차 아직 혁신의 생태계가 미흡한데,세종시가 과연 성공할지,오송은 또 제대로 된 의료복합단지가 될 수 있을지 모든 게 불투명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지도에 선을 마음대로 그어 곧바로 실리콘밸리가 튀어나온다면 어느 나라인들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
충청권만 비난할 일도 아니다. 다른 지역 정치인들도 다를 바 없다. 대덕연구단지가 연구특구로 지정되자 호남권 영남권 정치인들은 한통속이 돼 대구 광주도 연구특구로 해달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그리되면 대덕~대구~광주를 잇는 삼각벨트가 된다는 주장이었다. 또 하나의 정치적 실리콘밸리는 이렇게 탄생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실리콘밸리가 될 거라며 밸리,벨트,클러스터,특구 등 온갖 현란한 이름을 내건 곳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정치인들의 이런 논리때문에 과학기술 인력체계도 헝클어졌다. 대덕에 KAIST가 있는데 광주 대구에는 왜 없느냐는 식으로 해당 지역 정치인들은 밀어붙이기만 했다. 국가 과학기술 인력 양성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는 그들의 관심 밖이 된 지 오래다. 이공계 인력의 양적,질적 위기가 그냥 온 게 아니다.
이건 과학벨트가 아니라 정치벨트다. 영어,이민,혁신적 금융 같은 실리콘밸리의 고유한 성공 요소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개방과는 거리가 먼 폐쇄성,공정한 경쟁보다 정치적 해법을 우선하는 행태,협력은커녕 적대적 편가르기가 판치는 분위기 속에서 실리콘밸리를 꿈꾼다고? 정치적 포퓰리즘과 지역 이기주의가 과학기술마저 망치고 있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