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장 없는 복지'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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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기피 초래…국가경쟁력 약화"네덜란드는 병든 국가다. " 1980~90년대 네덜란드 총리였던 루드 루버스는 '성장 없는 복지'의 함정에 빠져있던 네덜란드를 이같이 평가했다. 당시 관대하고 폭넓은 사회보장제도로 유명했던 네덜란드였지만,국민들 사이에 노동 기피 현상이 팽배해 있었다. 결국 실업자를 먹여 살리기 위한 재정부담은 급증했고 경제성장은 뒷걸음질쳤다.
후손에 증세부담 전가 옳지 않아
루버스 총리는 우선 실업보험 장해보험 등의 수혜 기준을 강화하고 혜택을 줄여나갔다. 생산가능인구의 취업을 유도하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집권당은 1994년 총선에서 지지자의 25%를 잃었다. 하지만 5~6년이 지나 루버스 총리의 정책은 빛을 발했다.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일관된 정책을 실시해 강소국으로 거듭난 것이다. 최근 야권이 무상급식 · 무상의료 · 무상보육 및 반값 대학등록금 등 보편적 무상복지 정책을 시리즈로 내놓으면서 복지 문제가 주요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무상복지를 실현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소요된다. 야권의 무상복지 정책에는 연간으로 적게는 24조원에서 많게는 50조원 이상까지 소요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재원을 마련하다 보면 나랏빚은 늘어날 것이고, 증가한 빚은 결국 세금을 더 거둬 메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제시 없이 무상복지만을 내세우는 것은 2012년 선거를 앞둔 전형적 포퓰리즘이 틀림없다.
내년에 예정돼 있는 법인세율과 소득세율 인하를 철회할 경우 2012년과 2013년 2년간 확보되는 예산이 3조7000억원 남짓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대대적인 무상복지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세율 인하는커녕 현재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세율을 인상해야 할 형편이다.
이는 자국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경쟁적으로 세율을 인하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경쟁국은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일찌감치 법인세율을 내렸고 국제적으로 최고 수준의 법인세율을 유지해왔던 미국과 일본조차도 최근 들어 법인세율 인하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상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증세의 결과는 기업 활력 상실로 인한 투자 축소,외국 기업의 한국 외면,그로 인한 일자리 감축과 우리나라 성장 잠재력 약화이다. 우리가 누린 무차별적인 복지의 대가로 후손들은 일자리 부족과 과중한 세금 부담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똑같이 부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인데 왜 '부자 감세'에는 찬성하면서 '부자 복지'에는 반대하냐고 묻는다. 그러나 법인세율 인하 등의 감세정책은 1차적으로는 대기업의 세금 부담을 감소시키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 경제 전반의 투자와 고용을 확대시켜 국가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 경제적으로 긍정적 파급 효과가 없는 '부자 복지'와 동일선상에서 볼 수 없다.
증세를 한다고 해도 엄청난 복지 예산을 충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증세로 인한 투자 의욕과 근로의욕의 상실,외자 유치 실패,이로 인한 경제 성장의 둔화는 결국 세원을 축소시켜 세율 인상에도 불구하고 세수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세계 경제에 위협 요인으로 작용했던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의 재정위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 무상복지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 세대가 누리는 무상복지는 다음 세대가 갚아야 할 빚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재원도 해결하고 복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는 보다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싶다. 성장 없는 복지의 함정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동근 <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