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노동자 파업 겹쳐 시위 다시 격화…수에즈 운하 폐쇄 우려

무바라크, 공식활동 재개
술레이만, 시위 강제진압 경고
시위대 '최대 규모' 집결로 맞서
스위스, 무바라크 은닉재산 조사
2주째 반정부 시위가 이어진 이집트 사태가 다시 악화될 조짐이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개헌 및 정치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8일에는 이번 사태 발발 이후 최대 인파가 시위에 참가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파업까지 겹쳐 수에즈 운하 운영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무바라크 자신감,부통령은 엄포

이집트 국영통신사 메나는 무바라크가 개헌위원회 및 정치개혁 이행 감독위원회 설립을 승인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개헌위원회는 오는 9월 치러지는 대선 입후보 자격을 완화하고 대통령의 연임제한 규정을 신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에서 대선에 출마하려면 의회 상 · 하원,지방의원 등 250인 이상의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집권당이 의회의 80% 이상을 장악한 현 구도에서는 야권의 대선 출마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바라크는 이날 정치사범 34명을 석방하는 등 유화책을 추가 제시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외무장관을 접견하는 등 공식 일정도 수행했다. 퇴진 압력에 주춤했던 무바라크가 다시 강수를 두는 모습이다. AP통신은 "며칠간 유화책을 제시하면서 시위가 다소 잠잠해지자 자신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도 메나와 가진 인터뷰에서 반정부 시위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시위 강제 진압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술레이만은 또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야권 최대 규모 반정부 시위이에 따라 야권의 시위도 격렬해졌다. 이집트 최대 야권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은 "정부의 유화책은 시간 벌기용"이라고 규정하고 시위를 계속했다. 야권은 무바라크의 퇴진만이 해법이라는 입장이다. 무슬림형제단 측은 이날 무바라크뿐 아니라 정권 관련자가 모두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카이로의 알 타흐리르 광장에는 수십만명의 시위대가 몰린 것으로 추산됐다. 국영 TV 등 현지 언론들은 이날 모인 인파가 시위 발발 이후 최대 규모라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정치에 무관심하던 중산층이 시위에 참가,스마트폰으로 시위 현장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 노동자들도 시위대에 가세했다. 알 타흐리르 광장 인근에서는 300명의 이동통신업계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수에즈에서도 200여명의 통신 노동자와 1300여명의 철강노동자,3000여명의 운하 노동자 등이 시위를 벌였다. 운하 인근 사이드항의 노동자들은 9일 파업에 동참했다. 이번 파업으로 수에즈 운하의 폐쇄 우려까지 나온다. 그러나 당국은 "파업에도 불구,운하는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운영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여전히 오락가락미국의 태도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미국은 지난 주말부터 무바라크에 대한 압박과 지지 입장을 왔다갔다 했다. 이날 술레이만과 통화한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이집트 주민의 열망에 부응해 즉각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진전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이집트 정부가 약속한 것을 즉각 이행하도록 요구하는 한편 △집회 · 표현의 자유 허용 △계엄 즉각 해제 △야권과 대화 확대 △야당 인사가 참여하는 개혁 등 요구사항 4개를 추가로 제시했다. 그러나 술레이만은 "성급한 개혁은 혼돈만 가져올 것"이라며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은 스위스 정부가 무바라크의 스위스 은닉 계좌 존재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스위스는 지난달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의 계좌를 동결했다. 무바라크 일가의 재산은 700억달러로 알려졌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