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知行 33訓 Ⅱ'] "후배가 선배보다 월급 5배 더 받아야 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이건희 회장 경영철학 반영
초일류 기업 구현 지침 마련

사업복합화
R&D·생산단지 한곳에…시너지 극대화·문제 조기 해결

핵심 인력 확보
삼고초려·국적불문·조기발굴, 'S급 인재' 확보 키워드 제시
中·印 지역전문가 2배 확충

불량제거
최고 품질의 제품 만들어, 서비스센터 아예 필요없게
2009년 초.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번지고 있던 시기였다. 삼성전자가 분기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여파가 셌다. 삼성그룹은 전무 이상 모든 고위 임원들을 경기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으로 불러들였다. 교육을 위해서였다. 내용은 '삼성 경영철학에서 찾은 위기 극복의 지혜'였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철학을 기반으로 위기를 극복해보자는 취지였다. 이때 작성된 것이 '신지행 33훈'이다. 그리고 삼성은 2009년,2010년 연이어 사상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삼성인력개발원은 이때 만든 신지행 33훈에 구체적 실천 지침까지 더해진 '지행 33훈Ⅱ'를 만들어 임원들에게 전달했다. 이 책자에는 '초일류 기업 구현의 지침서'라고 표기돼 있다. ◆R&D와 생산은 한곳에서'지행 33훈Ⅱ'의 내용은 크게 경영자의 덕목,사업전략,경영 인프라,인사조직,연구 · 개발,제조 생산,마케팅,글로벌화,기업문화 등 9개 분야,33가지 주제로 나눠 구성돼 있다.

신경영철학을 기초로 만든 과거 지행 33훈과 비교하면 당시 신경영을 대표했던 7 · 4제를 비롯해 질 위주의 경영,국제화 등은 새로운 내용으로 대체됐다. 이미 상당부분 삼성이 달성한 것이거나 새롭게 변화된 상황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기업과 가장 차별화된 지침은 경영 인프라 분야의 '복합화'다. 삼성은 "반도체의 성공 요인은 R&D와 생산을 동일 단지에서 수행한 데 있다"고 평가했다. 연관 부서와 회사를 가까이 둠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문제가 생기면 조기에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해외 진출 시에도 계열사를 인근 지역에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공장 부지를 확보할 때 처음부터 넓게 잡아야 한다"는 내용도 복합화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업전략 분야에서는 삼성 특유의 '업의 개념'이란 항목을 재차 강조했다. "업의 개념 파악 여부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좌우된다. 부품업은 모든 전자사업의 기본"이라고 표현했다. 삼성이 해외 다른 전자회사와 달리 부품회사를 수직계열화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금융업에 대해서는 "금융업은 신용과 함께 위엄,친밀감이 중요하다"며 금융회사에도 제조업과 같은 R&D 개념을 도입할 것을 주문했다.

◆다른 기업보다 20~50% 더 줘야 한다

인사조직 분야는 무려 9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삼성이 중시하는 핵심 인력과 관련해서는 'S급 인력''삼고초려''국적불문''조기발굴''유출방지' 등의 키워드를 제시했다. 구체적 지침으로는 "인사팀에 특수 인력,핵심 인력을 찾는 전문가를 확보하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인재를 확보하는 인재'를 양성하라는 주문이다. 또 S급 인력에 대해서는 '사장 월급을 줘도 아깝지 않은 인재,해외 일류 기업에서 특급 대우를 받는 인재'로 규정하고 사장이 삼고초려해서 뽑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차등 보상에 대해서는 "동일 직급이라도 3배 이상 차이가 나야 일류 회사"라고 규정했다. 월급 50%를 올려주더라도 S급,A급 인력으로 무장하면 이익은 그 이상 증가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서는 동종업계 회사보다 20~50%를 더 주고 경쟁사와의 격차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일본 업체들이 벤치마킹을 시작한 지역전문가 제도 운용 방식도 명문화했다. "중국 인도는 5~10년 후를 대비해 2배로 늘리고 미국 유럽은 축소하라"는 것.이들은 그 국가의 현황뿐 아니라 국민성까지 입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요구도 덧붙였다.

인재 확보와 함께 하위 5% 정도의 인력을 매년 교체한다는 상시 구조조정에 대한 지침도 만들었다. 이와 관련,이 회장은 "구조조정은 평소에 하고 1~3% 정도의 감축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인력을 지속적으로 정리하면 한꺼번에 10%,20% 자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21세기 서비스센터는 없어져야

이 회장은 2007년 9월 "21세기에는 불량이 없어져야 한다"며 "그러면 서비스센터가 없어질 것이고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라는 얘기다. 또 제품의 경쟁력은 주요 장비에 의해 판가름난다고 보고 사별로 "제조장비 개발을 위한 전담기구나 자회사 설립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구매활동에 대해서는 "노키아의 경쟁력인 구매 노하우를 연구해 벤치마킹하고 구매 쪽에 우수 인력을 배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또 우수 협력업체는 경쟁사에 빼앗기지 않도록 하고 부정 가능성이 높은 보직은 수시로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구매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경영자의 관심과 대금의 현금 지급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사회공헌 항목에서는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이 기업의 가장 큰 사회환원"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도 "국민 모두 삼성 하면 국민기업이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마음속에 스며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지시를 덧붙였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 '지행 33훈''지행 33훈'은 1993년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고 말한 프랑크푸르트선언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지행은 지행용훈평의 준말로 삼성 경영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을 얘기한 것이다. 알아야 하고(知),행동해야 하며(行),시킬 줄 알아야 하고(用),가르쳐야 하고(訓),평가할 줄 아는(評) 종합예술가로서의 실력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