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물가' 기업 조이는 정부] 윤증현 장관 "시장구조 뜯어 고쳐 기름값ㆍ통신비 내리겠다"

"내수기업 과다한 이익
가격결정 투명성 의문
공정위 물가 감시 당연"
유류세 인하엔 소극적
물가와의 전쟁에서 원론적인 입장만 강조해왔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업계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9일 과천청사에서 열린 제3차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다. 지난달 열린 1,2차 회의에서는 "경제 순항을 위해선 물가안정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정유 · 통신 산업은 대표적 독과점 산업"이라며 "기름값과 통신료 인하를 위해 시장구조를 뜯어고칠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문했다.

이어 열린 출입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도 "수출해서 벌어들이는 것과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이익을 가져오는 건 다르다. 물가 부담이 커지는데 기업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정유사와 통신사를 직접 겨냥해 요금인하에 앞장서줄 것을 요청했다. ◆"수출 · 내수기업 이익은 다르다"윤 장관은 "통신사업자가 지난해 무려 3조6000억원의 이익을 냈고 정유사들도 작년 3분기까지 2조3000억원의 이익을 냈다"며 "두 분야 모두 구조조정 등으로 가격인하 요인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전자와 같은 수출기업이 1조원 이익 내는 것과 SK나 KT 등 내수기업이 1조원 이익 내는 것은 다르다"며 "내수기업의 적정이익이 어느 정도인지는 논란이겠지만 통신 및 정유사들이 과다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시장의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윤 장관은 "통신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신용카드 수수료 같은 것은 국회에서 내리라고 하면 내리는데 왜 통신비는 그냥 놔두는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는 "통신요금이 결정되는 가격구조를 면밀히 들여다볼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가격인가 방식을 재검토하는 등 제도개선 방안도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름값은 업계 폭리가 문제"기름값에 대해서도 윤 장관은 인하 여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름값 중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은 반면 세전 휘발유 가격은 OECD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윤 장관은 "기름값은 국제 가격과 연동돼 있다고 하는데 국제유가가 오르면 확 올리고 내리면 안 내리는 비대칭성이 문제"라며 "가격결정의 투명성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유류세 인하에 대해선 "향후 물가 추이와 관련해 상황을 보면서 판단하겠다"며 소극적인 입장을 비쳤다. 그는 "유류세는 세수의 80%가 교통특별회계로 넘어가 도로 등 인프라 구축에 쓰이는 만큼 인하하기가 쉽지 않다"며 "반면 기름값은 정보 공개나 구조적 요인 개선 등으로 충분히 내릴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물가감시 더 강화할 것"공정위가 물가관리 '전위부대'로 나선 것에 대해서도 힘을 실어줬다. 윤 장관은 "공정위의 물가감시 역할과 관련해 최근 일부 이견이 제기된 바 있으나 공정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의 담합소지 등을 감시하는 것은 법 테두리 내에서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불공정거래 행위 시정과 소비자 이익 보호를 위한 공정위의 역할은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종태/서욱진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