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시나리오 작가

2007년 11월 미국 방송 · 영화 작가조합은 방송사와 할리우드 제작사를 상대로 파업에 들어갔다. 2.5%(수익 1달러당 2.5센트)인 TV시리즈 2차 판매(인터넷 · 휴대폰 방송분) 지분과 20달러짜리 한 개당 4센트 받는 DVD 판매 지분율(0.2%)을 두 배로 올려달라는 게 골자였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영화와 TV프로그램 제작은 중단되고 골든 글로브상 시상식마저 취소됐다. 소품업체 등 촬영이 없으면 수입이 없는 이들의 고통도 잇따랐지만 작가에 대한 일부 연예인과 시민의 지지에 힘입어 100일 만에 DVD 판매 지분율 인상이란 성과를 끌어냈다. 20달러짜리 DVD 한 개당 지분이 4센트에서 8센트로 늘어났다는 얘기다. 1만개를 팔아봤자 800달러다. 안젤리나 졸리의 영화 한편 출연료가 2000만달러(한화 220억원) 안팎인 걸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액수다.

그래도 우리에 비하면 양반이다. MBC에서 보도한 연예인 신정환씨의 프로그램 편당 출연료는 400만~500만원,연간 수입은 12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국내 영화시장은 1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주연 배우 개런티는 3억~5억원이라는 게 통설이다.

하지만 이면은 영 딴판이다. 2009년 영화 스태프들의 평균 연 소득은 623만원이다. 시나리오 작가는 더하다. 제작사와 계약해도 촬영이 진행될 때까지 쥐꼬리만한 계약금 외엔 한푼도 안준다는 마당이다. 결국 30대 초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병마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알려진 정황으로만 보면 아사(餓死)했다는 건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참담함을 넘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객석 점유율 60~70%,1000만 관객 시대는 제작사와 유명인들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최씨의 죽음은 배우 중심의 투자를 이끌어내느라 작가에 대한 지원은 인색하기 그지없는 한국 영화계의 비정상적 구조,영화는 물론 모든 콘텐츠산업의 근간인 대본(시나리오)에 대한 국내 방송 · 연예계의 형편없는 인식을 대변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글과 스토리에 대한 투자야말로 영화산업의 핵심이란 인식의 전환과 함께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작가와 스태프들에 대한 근본적인 처우 개선책이 강구돼야 한다. 말값만 있고 글값은 없는 상태가 계속되는 한 콘텐츠 강국은 없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