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제 작품 코드는 인본주의…사람들 얘기에서 영감 얻죠"

연극 '로미오…' 연출한 장진 감독
"영화요? 작년에 극장 세 번 갔나. 공연도 별로 안 봐요. 대신 무용은 지난해 10편도 넘게 봤죠."

의외였다. 영화감독 장진 씨(41 · 사진)는 어떤 대사도 공식도 장치도 없이 무용가들이 오롯이 자기 몸만으로 표현하는 무대를 보면 그렇게 솔직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 솔직한 예술이 그리웠던 걸까. 그가 '웰컴 투 동막골' 이후 9년 만에 창작극 '로미오 지구착륙기'로 연극 무대에 돌아온다. 오는 16일 개막을 앞두고 리허설에 열을 올리고 있는 그를 남산예술센터 분장실에서 만났다. 이번 희곡은 서울의 한 달동네 재개발지구에 미확인비행물체(UFO)가 떨어지면서 집값이 하락하는 해프닝에 관한 이야기다. 미래에 대한 상상이 서민의 삶과 만나는 소재라 장르도 '서민 SF'라고 붙였다. 기발한 상황 설정과 재치 있는 대사,통쾌한 세태 풍자까지 장진 식의 블랙코미디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한국에서 '집'이 갖는 상징성을 건드리고 싶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어떻게 평생 소원이 '집 하나 갖는 것'일 수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대학극의 표준을 다시 만들고 싶었어요. 요즘 대학생들이 자꾸 기성 연극만 하고 싶어하니까 창작은 안하고 남의 작품 가져다 흉내만 내잖아요. 대학극만 가질 수 있는 통쾌한 풍자,풋풋한 소동극을 만들고 싶었어요. "

이번 무대에 오르는 인원은 60명에 달한다. 그가 몸담았던 서울예대 창작극 동아리 '만남의 시도' 30주년 기념작으로 16일부터 5일간 8차례 공연한다. 무대를 사랑하는 그이지만 정작 유명세를 안겨준 것은 연극보다 상업영화라는 평이 많다. '간첩 리철진'(1999년) '킬러들의 수다'(2001년)부터 지난해 '퀴즈왕'까지 영화 10여편을 연출했고 2005년 최다 관중을 동원했던 '웰컴 투 동막골' 등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영화도 다수다. 다음 달엔 '로맨틱 헤븐'도 개봉한다.

그에게 영화와 연극은 어떻게 다를까. "영화는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스트레스를 받죠.그래도 지금까지 연출,제작한 영화를 따져보니 10년간 200억원 이상 벌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

그가 만든 대부분의 영화는 '연극같은 영화'다. 엉뚱한 장면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재주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걸 '장진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스스로 생각하는 '장진 스타일'은 따로 있다. 영화든 연극이든 그가 버릴 수 없는 것은 '인본주의'.그는 모든 작품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감동을 이끌어 내려고 시도했다. 시나리오나 희곡을 쓸 때 영감을 얻는 것도 사람이다. "책도 영화도 음악도 아니에요. 사람을 만나요.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얻은 이미지를 작품에 넣어요. "연극의 매력은 한 작품이 주는 끊임없는 성취감이라고 했다. "제가 쓴 희곡이 10편 이상인데,무대에서 보면서 더 좋게 계속 고쳐나갑니다. 전 절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기본'만 잘하자는 주의지.살면서 그 '기본의 기준'을 점점 높여왔죠."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