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단자회사 은행지배의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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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ㆍ신한 M&Aㆍ회장선임 촉각…투명 절차로 금융선진화 토대를이합집산을 거듭하던 은행권이 금융지주회사 4강 체제로 정착되고 있다. 금융공기업이던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모태인 KB금융은 저효율 극복을 위한 환골탈태에 나섰고,공적자금 투입으로 국영은행의 멍에를 뒤집어쓴 우리금융은 민영화를 위한 몸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하나금융과 신한금융은 단자회사를 모태로 부실화된 금융회사를 끌어 모아 거대한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하나금융은 충청은행,보람은행,서울은행,대투증권을 차례로 소화시켰고 외환은행 인수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신한금융은 동화은행,제주은행,조흥은행,LG카드를 인수해 시가총액 최대의 금융그룹으로 부상했다. 공기업 및 공적자금 기반의 KB금융과 우리금융을 제외하면 결국 단자회사 출신 중심으로 재편된 셈이다. 단자회사는 사채동결을 위한 8 · 3조치로 얼어붙은 자금시장의 숨통을 터주기 위해 어음유통 전문 금융업으로 1972년 출범했다. 당시 어음할인 방식의 자금대차는 고율의 소득세 종합과세 대상이었는데 단자회사 중개를 거치면 낮은 세율의 분리과세 특례가 적용됐다. 국제금융기구가 출자한 한국투자금융을 선두로 대기업 출자에 의한 단자회사 설립이 이어졌고 재일교포 자금의 국내 반입을 명분으로 제일투자금융이 1977년에 뒤늦게 가세해 6대 단자 횡재시대를 열었다.
전두환 군부가 권력을 잡자 제일 먼저 돈을 싸들고 찾아가 일해재단의 주춧돌을 헌납한 것도 단자회사협의회다. 그러나 신군부가 신규 허가를 남발했고 어음중개 업무를 종합금융과 시중은행으로 전면 확대하자 영업기반을 잃은 단자회사는 은행,증권회사,종합금융 등으로 재편됐다. 한국투자금융은 하나은행으로,제일투자금융은 신한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거대한 전국망을 갖춘 시중은행과의 경쟁에 나섰다.
단자회사는 담보용 백지어음을 미리 받아두고 부실 징후만 보이면 재빨리 채권을 회수하는 매몰찬 영업방식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은행 전환 이후에도 이러한 기조를 유지했다. 기존 은행들이 기업대출 부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쓰러지자 하나와 신한이 앞장서 인수를 통해 몸집을 키웠다. 인수자금은 주로 제3자 배정 신주발행에 의존했는데 그 결과 기존주주의 지분은 계속 희석됐다. 하나금융의 지분은 고도로 분산됐으며 신한금융의 최대주주인 재일교포 지분도 17% 수준으로 쭈그러들었다.
신한금융의 경우 지분율 격감에도 불구하고 재일교포 주주 특별우대는 계속돼 사외이사 8석 중에서 재일교포에 4석을 여전히 배정했다. 원래 사외이사는 투명경영을 담보하기 위해 법률,회계,경영 등의 전문성을 지닌 독립적 인사로 운영하는 것이 원칙인데 신한금융만 특수하게도 재일교포 주주를 전문성과 독립성을 따지지 않고 선임해왔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자금도 신규 주주 영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외환분야의 전문성과 우량은행으로서의 자부심을 자랑하던 외환은행 구성원들은 시내 한복판에 플래카드를 내걸고 반대투쟁을 펼치고 있다. 외환은행 인수는 기존의 부실 처리와는 다른 차원의,우량은행 대상의 전략적 결합이다. 하나금융이 표방한 상당기간 분리경영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인사와 함께 경륜을 갖춘 전임 외환은행장을 지주회사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등의 탕평책을 내놓아야 한다. 신한금융도 재일교포 주주에 대한 사외이사 우대 관행을 정리해 단자회사 시대를 마감해야 한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완결과 신한금융의 회장선임 및 지배구조 재편은 금융계의 당면과제다. KB금융 업그레이드,우리금융 민영화와 함께 단자회사 시대의 피날레를 장식할 하나금융과 신한금융의 체질개선은 우리나라 금융선진화의 성패를 가름할 시금석이다.
이만우 < 고려대 경영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