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랍 민주화' 이제 시작일 뿐

이집트혁명 열기 인근국가 번져…서방과의 공존체제 구축이 관건
지난 11일 이란의 아자디(자유) 광장에서 이슬람 시민혁명 32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을 때,이집트 타흐리르(자유) 광장에선 독재자 무바라크를 권좌에서 축출한 위대한 시민혁명의 환호성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18일간의 이집트 시민의 절규와 혁명은 21세기 아랍 민주화를 위한 고귀한 초석이 될 것이다. 1979년 이란이 시민혁명을 통해 이슬람 정부를 선택했을 때,이집트는 오랜 적국인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다. 평화의 가면을 쓰고 가혹한 군부독재로 국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32년이 지난 지금 두 나라의 운명은 뒤바뀌게 됐다. 이집트는 군부통치의 역풍으로 아랍 세계에서 가장 앞선 민주화의 길을 선택했고,이란은 이슬람 혁명을 방패 삼아 아직도 국민들을 옥죄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이집트 민주화의 길은 이제부터다. 누가 차기 집권세력이 될지,과도기 국가권력을 차지한 군부중심의 통치가 완전히 종식될지는 미지수다. 대부분의 중동 국가에서는 전통적으로 군부가 권력의 실세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따라서 이집트 민주화의 관건도 군부가 시민들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해 본연의 임무로 되돌아갈 것인지에 달려 있다. 다만 민의를 대표하는 뚜렷한 지도력과 구심점이 없는 것이 불안요인이다. 현재 아랍연맹 사무총장인 아무르 무사와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을 역임한 엘바라데이가 강력한 대안 정치세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아무르 무사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이집트 국내외 정세에 정통하다는 평을 받고 있고,엘바라데이는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국제적 지명도를 갖추고 있어 개혁 성향의 젊은층에게 인기가 높다.

무엇보다 이집트 최대 재야세력으로 국민 사이에 두터운 조직과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무슬림형제단의 태도와 정치적 향방이 최대 변수다. 독자적인 후보를 낼지,특정 인물을 지지함으로써 정치적 연대를 할지도 아직은 지켜보아야 한다.

기득권을 대변하는 군부도 보수 온건 세력을 끌어안는 후보를 내세울 것이 분명하다. 야권이 분열되면 어부지리를 얻을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결국은 이집트 국민들이 선택할 문제다. 그리고 세계는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이집트 외무장관 아불 가이트가 미국이 이집트 내정에 간섭하지 말도록 촉구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발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하더라도 민의를 대표한다면 이 정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1989년 알제리에서의 악몽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알제리에서는 선거혁명으로 오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이슬람계 정당인 이슬람구국당이 압도적인 표차로 집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서방의 지원을 받는 군부에 의해 선거가 무효화되고 정당이 해산당했다.

지난 18일간 레바논,시리아,요르단,이란 등지에서 직접 지켜본 이집트 사태는 아랍 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시작임이 분명하다. 아랍 민주화 시위 도미노가 이집트를 넘어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요르단 등 인근의 친미적 온건 왕정국가로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예멘,알제리,리비아 등의 독재국가들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동안 군부독재와 미국의 부적절한 협력으로 당장은 반미 성향의 이슬람 정권이 등장할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결국 아랍 민중들은 과격한 원리주의 이슬람보다는 서구와 협력하고 공존하는 새로운 정권을 원할 것이다. 이슬람 성향의 정의발전당이 서구와 좋은 협력을 통해 획기적인 국가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터키 모델이 좋은 예다.

그동안 아랍세계는 변절한 이집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위대한 시민혁명으로 이집트는 다시 아랍세계의 확고한 맏형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이희수 < 한양대 중동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