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충청도 법칙'

"신행정수도 건설로 대선 때 좀 재미를 봤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9개월여 만인 2003년 11월 신행정수도건설 국정과제회의에서 한 말이다. 신행정수도 충청권 건설공약이 대선 때 충청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의 시도는 적중했다. 충청권에서 큰 표 차로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이 됐으니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런 정략적 접근을 통해 꿈을 이뤘지만 취임 후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해야 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신행정수도는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로 축소됐다. 현 정부에서도 갈등은 재연됐다. 이명박 정부가 '행정부처 이전 대신 기업이 내려가는' 내용의 세종시 수정안을 들고 나오면서 찬반이 첨예하게 맞섰다. 국론은 4분5열됐다. 8개월여 공방 끝에 국회에서 수정안이 부결되고서야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지만 후유증은 컸다. 비단 노 전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때 충청표를 겨냥한 공약을 제시했다.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충청권 유치가 그것이다. 이 대통령이 최근 이를 백지화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뒤 충청권 민심이 들끓고 있다. 다른 지역이 유치전에 가세,지역갈등으로까지 비화됐다. 신행정수도 때처럼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엄청난 후유증을 예고한다.

유독 충청권이 대선 때마다 논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신행정수도와 과학벨트,의료복합단지 등 주요 국책사업의 입지로 충청권을 끌어들인 것이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충청표가 대선의 성패를 가른다는 판단에 일단 이기고 보자는 승리지상주의가 보태진 결과다. 역대 대선이 이를 입증했다. 충청권에서 지고도 대통령이 된 사람은 거의 없다.

1988년 13대 대선이 유일한 예외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충청도에서 32%를 얻어 33.6%를 얻은 김종필 후보에게 1.6%포인트 밀렸지만 대통령이 됐다. 그래도 깨지지 않는 '충청도의 법칙'은 있다. '충북에서 이기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는 공식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충청도 전체에선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에게 밀렸지만 충북에선 압도적인 표차로 1위를 차지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없이 충청도에서 이기면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특히 근소한 표차로 이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엔 충청지역의 표가 결정적이었다. 결국 충청도를 향한 달콤한 공약의 유혹은 '충청 승리=대선 승리'라는 등식에서 출발한다. 이 대통령도 최근 신년 좌담회에서 이를 간접 인정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때 충청도 표에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충청표를 의식해 과학벨트를 약속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이런 승리의 법칙은 내년 대선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그렇다. 영 · 호남의 지역주의는 여전하다. 수도권은 전통적으로 야당이 강세다. 결국 대선전이 시소게임으로 간다면 충청도에서 결판이 날 수 있다. 이런 구도에서 과학벨트가 충청도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가면 충청권에서 참패할 거라는 걸 여권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과학벨트 입지 선정에 정치논리를 배제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말에 무게를 싣고 싶지 않은 이유다. 어차피 표 논리에서 출발한 과학벨트 공약이었던 만큼 해법도 정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아니 이미 해법은 나와 있다. 위정자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이재창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