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수치예보 모델' 개발 시급하다

'완벽예보' 향한 현대기상학 핵심…재해기상 체계적 연구 뒤따라야
강릉은 지난 11일 하루 동안 77.7㎝의 눈이 내려 일일 적설량으로는 1911년 기상관측 이래 10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접한 동해에서도 70.2㎝의 눈이 내려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런 기록적인 눈폭탄이 있기 직전까지 강원도는 한 달 넘게 강수가 내리지 않아 겨울 가뭄에 애를 태우며 제한 급수 시행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극과 극을 달린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날씨의 변동성이 매우 커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를 이 변동성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꼽고 있다.

날씨의 변동성이 커졌다는 것은 기상예보관들이 무척이나 힘들게 됐다는 뜻이다. 활을 쏘아 움직이는 목표물을 맞히고자 할 때,천천히 작은 폭으로 움직이는 목표물을 정확히 맞히는 것보다 빠르게 큰 폭으로 움직이는 목표물을 맞히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번 동해안 폭설 사건은 단 하루 사이에 40년 만의 최악의 가뭄에서 100년 만의 최악의 폭설로 급변한 만큼 그 변동성 또한 기록적이었다. 이번 눈 폭탄 사건에서 기상청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예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폭설이 내리기 이틀 전인 9일에 처음 예보하면서 적설량을 최대 15㎝로 예상했다. 하루 전인 10일 오전에는 12일까지 10~20㎝,많은 곳은 30㎝로 예보를 강화했으며,30㎝의 많은 눈이 내린 11일 오후 예보에서는 12일까지 최고 60㎝의 눈이 더 올 것으로 예상했다. 조금 더 일찍 정확한 예보가 이뤄졌으면 하는 결과론적인 아쉬움은 있지만,실로 변화무쌍한 날씨를 잘 감시해가며 최고 90㎝의 적설량을 예상했다.

실제 적설량에 비해 다소 적은 양의 예상이었지만 세기적인 날씨 사건임을 감안할 때 성공적인 예보 사례라 평가할 만하다. 불규칙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과녁의 정중앙은 맞히지 못했을지언정 그 가까운 곳은 제대로 맞힌 셈이기 때문이다.

기상청의 예보가 국민들의 질타를 받아야 할 때가 있다면,그것은 완벽한 예보에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최선의 예보에 실패했을 때이다. 물론 '최선의 예보'에 만족하는 것으로 그쳐선 안되며 좀더 '완벽한 예보'를 지향하기 위한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 현대 기상학에서 예보의 정밀도를 높이기 위한 핵심기술은 수치예보에 있다. 수치예보란 대기의 운동을 지배하는 물리현상들에 대한 수학방정식을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풀어 대기의 현재 상태로부터 미래상태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아쉽게도 아직까지 독자적인 수치예보 기술을 가지지 못했다. 따라서 기상 선진화를 이루고 보다 정확한 예보역량을 갖추기 위해서 시급한 것은 바로 이 수치예보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 올해부터 9년에 걸쳐 수치예보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사업에 나선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기술 관련 소프트웨어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다룰 전문인력의 양성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재해기상에 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취약점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11월 강릉에서 재해기상 전문 연구기관으로는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재해기상연구센터의 역할이 주목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전 세계적으로 빈발하고 기상재해가 대형화되면서 날씨 예보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날씨 및 기후 예보 기술이 국가 안전 관리의 핵심 요소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반해 지구 온난화로 인한 날씨 변동성의 증가는 오히려 날씨 예보 능력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완벽한 예보'에 한발 더 다가가는 '최선의 예보' 능력을 갖추는 것은 단시일 내에 이뤄지지 않는다.

정일웅 < 강릉원주대 기상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