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일본 디자인

일본 도쿄 긴자의 차로와 인도 사이 차단대는 독특하다. 우리 차단대처럼 세로로 세워진 판자 같은 게 아니라 둥근 파이프처럼 생긴데다 차로 쪽은 높고 인도 쪽은 낮은 두 줄로 돼 있다. 인도를 따라 설치된 벤치처럼 지나는 사람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도록 만든 셈이다.

각진 데가 없으니 부딪쳐 다칠 염려도 적고,울퉁불퉁한 곳 없이 간단하니 청소하기도 쉬울 것이다. 답답한 벽 같은 느낌도 훨씬 덜하다. 그에 비하면 판자 형태에 무늬를 넣거나 격자 형태로 만들어진 국내 차단대는 복잡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 실용성과 섬세함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공공디자인과 치장에 기운 듯한 우리 것과의 차이다. 건축가 안병의씨는 '공간은 아름다워야 하지만 그보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 뭐든 넘치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디자인도 다르지 않다. 극히 간결한 일본 디자인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서울 중구 순화동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옛 호암갤러리)에 마련된 '화(和);일본 현대 디자인과 조화의 정신'전이 관심을 모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설립 20주년을 맞아 일본 국제교류기금과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과 함께 기획한 전시회의 출품작은 문구,완구,주방기구,욕실용품,가구,가전제품과 디지털 제품 등 161점.

일본의 생활용품 2만점 중 선별했다는 제품들은 하나같이 주최 측이 내세운 일본 디자인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귀여운' '공예적인' '결이 고운' '감촉이 있는' '미니멀한' '사려 깊은' 등이 그것이다. 기능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제품 디자인의 근간을 '절제 속 세련됨'과 '일본적인 것'으로 삼는 데 대해 일본 측은 21세기 디자인의 근원을 문화적 전통에서 찾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1세기 일본 디자인 핵심 요소로 제시한 '조화의 정신'이란 다름 아닌 전통공예와 최신 기술,수공업과 산업생산,도시 디자이너와 지역 특산품 등 상반된 요소의 조화라는 것이다.

기모노 문양을 주방용품에 응용하고,아오모리 지역 나무가공 기법을 활용한 램프를 만드는 등 제작 공정 또한 전통공예기법을 원용한다고 한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전통,공동체,지역'을 바탕으로 새로운 민예 시대를 열고 있다는 것은 디자인 강국의 출발점이 어디여야 하는가를 일깨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