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거취놓고 뒤바뀐 여야…'동상이몽'

與 사퇴 압박에 野 '침묵'
"선거 앞두고 여론 안좋아 경질 안하면 민심 더 악화"
"元체제 이대로 가도 괜찮아"…거취문제 의외로 소극적 대응
원세훈 국정원장의 거취 문제를 놓고 여야가 뒤바뀐 모양새다. 야당은 원 원장의 사퇴 문제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반면 정작 우군인 여당 내에서 사퇴 목소리가 거세다.

한나라당의 홍준표 정두언 서병수 최고위원과 정몽준 전 대표 등은 23일 열린 최고 · 중진연석회의에서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과 관련,국정원의 쇄신과 함께 원 원장의 거취 문제를 거론했다. 홍 최고위원은 "국정원 내부에서 또는 군(軍)에서 국정원장을 내보내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 자체가 국정원장의 책임"이라며 "국정원이 쇄신돼야 하며 쇄신의 출발은 원장의 경질"이라고 주장했다.

서 최고위원도 "국정원이 산업 스파이에 나섰다가 적발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어설픈 행동에 나섰다가 나라를 망신시킨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고 인책론을 제기했다. 다른 핵심 관계자도 "다른 최고위원들처럼 공개적으로 얘기할 일은 아니지만 당내 의견을 모아 청와대에 원 원장에 대한 인사를 건의하려 한다"고 말했다.

여당이 국정원장 사퇴를 거론하고 나선 데 대해 정치권은 이유를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 선거를 앞두고 여론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명백한 실수를 잇달아 저지른 정보기관 수장을 인사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악화된 민심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이번 일로 국가정보원 자체의 사기가 떨어져 있어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짓고 가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도 한 몫하고 있다. 자칫 이 문제가 장기화돼 여권 내 갈등이 증폭될 경우 야당만 좋은 일을 시킨다는 우려도 이유 중의 하나다. 한 당직자는 "오는 3월4일로 예정돼 있는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해 사건 경위와 잘잘못이 밝혀지면 책임을 묻는 절차를 거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원 원장의 거취에 대해 '의외로'조용하다. 정부의 실책에 인책론을 강하게 제기했던 과거 기조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 2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원 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던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거취 문제를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손학규 대표도 "더 이상 국정원장을 해임하라는 얘기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식의 애매한 표현을 써가며 "국정원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원 원장이 비교적 민주당과 교감이 잘돼 꼭 바꿀 이유가 없다는 점과 야당이 나서지 않아도 여권이 국정원 문제로 자중지란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침묵의 이유로 꼽았다. 원 원장 체제가 유지되는 것도 야당에 나쁘지 않은 만큼 굳이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박수진/김형호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