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선 아래면 산다더니…몸사리는 기관

2월 펀드에 1조4400억 유입…운용사 '사자'는 2800억 그쳐
연기금도 여전히 신중 모드 "추가 조정 땐 자금 집행"

리비아발 모래 폭풍에 코스피지수가 1960선까지 내려갔다. 올 예상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도 9.5배로 낮아졌다. 하지만 2000선 밑이면 사볼 만하다던 기관투자가들이 증시 조정폭이 예상보다 커지자 적극 '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투신(자산운용사)은 자금 유입으로 현금비중만 높아졌고,연기금도 사태 추이를 좀더 지켜보겠다는 관망 분위기가 우세하다. 다만 1900선이 위협받는 추가 조정이 있거나 리비아 사태가 진정될 조짐을 보이면 언제든 자금 집행에 나설 태세다. ◆망설이는 자산운용사

2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펀드는 지난 22일 586억원이 들어와 9일째 순유입 기조를 이어갔다. 이달 들어 지난 9일 하루만 빼고 자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달 순유입 규모는 1조4400억원에 달했다. 증시 조정을 펀드 저가매수 기회로 활용하려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투신은 이달 들어 22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수 규모가 2800억원에 그쳤다. 프로그램 차익 순매도(3500억원)를 감안해도 펀드 순유입액의 절반에 그친 셈이다. 투신은 23일 순매수로 돌아서긴 했으나 그 규모가 255억원에 그쳤다. 유병옥 하나UBS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리비아 사태가 자국 내 문제로 끝날지,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국으로 확산될지 파장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주식을 사기보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식형펀드 내 주식 비중은 지난달 말 93.06%에서 22일 92.71%로 낮아진 반면,예금(0.56%→1.39%)과 콜론(1.77%→1.78%) 비중은 높아졌다. 금액으론 주식이 2조673억원 줄었고 예금은 5517억원,콜론은 301억원 각각 증가했다.

반면 시황 전망에 따라 일부 운용사는 저가매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영일 한국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중동 불안이 국제유가 상승으로 이어져 조정이 장기화될 수 있지만 펀더멘털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며 "상승추세 속 조정으로 보고 주식비중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코스닥에선 투신이 소폭이나마 열흘째 순매수해 눈길을 끈다. ◆연기금은 추가 조정시 '사자'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22일 5개 위탁운용사를 통해 총 500억원의 자금을 집행(매수)했으나,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다.

국민연금은 작년 말 현재 55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으며,올해 5조5000억원가량을 신규 투자할 계획이다. 국민연금 사정에 밝은 업계 관계자는 "리비아 사태라는 돌발변수가 있지만 국민연금은 연초 세운 자금 집행 계획을 수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조정폭이 커졌다고 해도 주식 매수 규모를 대폭 확대할 생각은 없다는 얘기다. 1조7000억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사학연금은 1900선 초반에서나 자금을 집행한다는 복안이다. 이윤규 사학연금 자금운용관리단장(CIO)은 "리비아 사태,유럽 재정위기 등이 변수로 남아있고 외국인도 순매도로 전환해 수급이 나쁘다"며 "증시가 더 하락하면 길게 보고 자금 집행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장은 "자금 집행 규모는 700억~1000억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학연금은 올해 국내 주식에 3400억원의 신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공무원연금은 가장 보수적이다. 작년 말 8600억원인 국내 주식 투자 규모를 올해는 1조600억원으로,2000억원가량 늘릴 방침이다. 권재완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자금운용본부장은 "2000선 밑에서는 주식을 사려했는데 아프리카와 중동 이슈가 예상보다 크게 확산되고 있어 관망하고 있다"며 "국제유가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지적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