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갈 곳 없는 민간 오페라·발레단

"해외 스태프와 1년 넘게 공들여 준비했는데,공연장을 못 잡아 막판에 무산됐어요. "(A오페라단장) 공연장을 못 잡아 낭패를 당하는 민간 오페라단과 발레단이 줄을 잇고 있다. 까닭은 이렇다. 오페라나 발레 한 작품을 올리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은 최소 넉 달.공연을 함께할 해외 연출가나 배우,스태프와 최종계약서를 쓰려면 국내 공연장의 대관 확인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민간 예술단체는 공연장을 언제 얼마나 쓸 수 있을지를 알기 어렵게 돼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립예술기관 특성화를 통한 국가브랜드 재창출'의 일환으로 국립공연장 및 국립예술단체를 기능 · 장르별로 나눈 뒤 생긴 문제 탓이다. 문화부는 국립극장,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정동극장,극장 용,명동예술극장,아르코예술극장 등을 장르별 특성화 공연장으로 지정했다. 이 중 예술의전당은 오페라 발레 고전음악 등 서양장르 중심의 공연장으로 분류했다. 문제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상주하는 예술단체에 2년 전 조기대관뿐만 아니라 우선대관권까지 준 것이다. 올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 건수는 국립오페라단 9건,국립발레단 6건,민간 예술단체 6건이다. 연 200일 이상이 국립단체에 돌아갔다. 한 발레단장은 "막상 대관신청 공고가 나면 한여름 비수기에 달랑 하루 정도 빈 상태"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민간 발레단이나 오페라단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 문예회관 등으로 내몰리고 있다.

민간예술단체들의 '눈물' 속에서 공연장소 특혜를 누리는 국립단체들이 '국가브랜드 재창출'이라는 취지에 맞게 창작품을 발굴하기는커녕 '기득권'에 안주한다는 게 예술계의 불만이다. 국립발레단은 올해 창작품을 '왕자호동' 하나밖에 올리지 않는다. 국가예산 80억원을 받는 국립오페라단은 창작품이 하나도 없다.

한국을 대표할 예술단체를 육성하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원 예산 확대와 대관일정 편의 봐주기가 작품의 질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예술도 다양한 경쟁과 자극 속에서 발전하기 때문이다. 국립예술단체의 대관에 시즌제,쿼터제를 적용하자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보라 문화부 기자 desit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