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시세조종 밝혔지만…처벌 쉽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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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1 옵션쇼크 조사 마무리
런던자금 홍콩 거쳐 매물 폭탄…풋옵션 매수로 448억 부당이득
국내 증시에 큰 파장을 몰고 온 '11 · 11 옵션쇼크'가 3개월여 조사 끝에 도이치뱅크 독일 본사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로 결론났다. 금융당국은 23일 도이치뱅크 본사와 홍콩지점,한국 도이치증권 등이 관여해 시세를 조종하고 불법이익을 챙겼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도이치뱅크 본사에 대한 조치가 검찰 '고발'에서 '통보'로 완화된 점 등에 비춰볼 때 유죄를 입증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더구나 외국인과 외국 법인에 대한 수사여서 사법처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이치 홍콩 · 서울 간 긴밀한 모의
증권선물위원회는 전 세계 도이치그룹 계열 금융회사들이 상호 협의와 보고를 통해 이번 사태를 주도했다고 밝혔다. 연루된 계열사가 도이치뱅크 독일 본사,도이치뱅크 홍콩지점,뉴욕 도이치은행증권,한국 도이치증권,도이치뱅크 런던지점 등 5곳에 달한다.
우선 '거사'에 사용된 실탄은 도이치뱅크 런던지점에서 나왔다. 이 돈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도이치뱅크 홍콩지점과 한국도이치증권으로 전해져 합성선물 매도와 풋옵션 매수거래로 이어졌다. 한국 도이치증권은 일부영업 6개월 정지를 당해 주식워런트증권(ELW) 영업 등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증선위는 이들이 수개월의 기획을 거쳐 작년 11월11일 당일 장 막판에 삼성전자 등 199개 종목,2조4424억원어치의 주식을 직전가보다 4.5~10.0% 낮은 가격에 7회 분할매도하는 방식으로 주가를 끌어내렸다고 결론지었다.
이 과정에서 도이치는 총 448억7873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도이치증권은 시세조종에 가담하고,회사 자금을 이용해 주가가 하락하면 이익을 보는 풋옵션도 매수해 10억여원의 부당이익을 취했다.
도이치뱅크 독일 본사에 대한 조치가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에서 지난 10일 의결한 검찰고발에서 통보로 바뀐 데 대해 한 증선위원은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거래행태에 대한 이해부족일 수도 있다는 일부 민간위원들의 이의 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처벌의 실효성 확보가 관건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와 임직원들에 대한 수사는 상당한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고발된 사람들이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법률 전문가는 "자발적으로 출두해 조사받지 않으면 범죄인 인도조약 등을 통해 강제수사해야하는데 범죄자가 아닌 외국인 피의자에게 이 같은 절차를 밟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홍콩과 뉴욕 직원들은 모두 영국 미국 호주 프랑스 등의 국적을 가진 외국인이다. 이들이 수사에 순순히 응할 확률은 높지 않다. 한 전문가는 사법적인 절차 외에 간접적인 방식으로 압박하는 방안이 유용할 것으로 진단했다. 예컨대 국내 금융감독 당국이 한국에서 계속 영업해야 하는 한국 도이치증권을 압박해 피의자들을 불러내는 방식이다. 또 도이치뱅크 본사에 대해선 벌금형만 가능한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양벌(兩罰) 규정으로는 도이치뱅크에 벌금형만 물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벌금형이라도 유죄로 판명될 경우 글로벌 금융환경을 감안할 때 도이치에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다른 당국자는 "요즘은 외국 시장에 진출하는 금융회사들이 해당 국가로부터 그간의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자진신고와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받는다"며 "벌금형이 확정되면 도이치의 글로벌 전략에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도이치뱅크는 "조사과정에서 한국 당국에 협조하겠지만 특수한 영역의 매매거래에 대해 제재한 점이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