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 명작 기행] 가장 낮은 곳에 내민 손길…성 프란체스코의 뜻을 되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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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블레센의 '아시시 풍경'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성인 프란체스코(1181~1226)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나고 죽은 이 성자만큼 살아생전 숱한 에피소드를 남긴 인물도 드물다. 그가 행한 기적은 단순한 기적을 넘어 동화적이고 자연친화적이기까지 하다.
아시시의 '천사표' 청년, 예수처럼 희생하는 삶 실천
기독교 신자의 롤 모델로
순례길에 오른 독일화가, 붉은 성당과 죽음의 언덕을 '시각적 警句'로 그려내
부유한 의류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프란체스코는 젊은 시절부터 박애정신으로 충만한 못 말리는 '천사표' 청년이었다. 아버지의 가게에서 옷을 팔다가 거지가 적선할 것을 요구하자 자기가 가진 것을 몽땅 거지에게 건네줄 정도였다. 이 광경을 지켜본 친구들은 그의 자선행위를 바보짓이라며 조롱했고 아버지는 아들의 어이없는 행동에 뒷골이 당길 지경이었다. 1205년 브리엔 백작의 군대에 입대한 프란체스코는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한 후 아시시로 돌아가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외진 곳에서 보내며 신에게 깨달음을 구했고 한편으론 아시시 부근의 나환자촌에서 환자들을 돌봤다. 그후 로마 순례를 떠나 그곳에서 거지들과 함께 구걸했다.
아시시에 돌아온 후 부근의 산 다미아노 교회의 십자가 예수상으로부터 "폐허가 되어가는 나의 집을 재건하라"는 계시를 받은 후 아시시 일대의 버려진 교회들을 재건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 온힘을 쏟는다. 맨발에 누더기를 입고 복음을 전파하는 프란체스코의 참된 모습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내 추종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프란체스코는 이들과 함께 나환자촌에서 아주 소박한 삶을 영위하는 한편 움브리아 지방의 산악지대를 돌며 소외된 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1209년 그는 11명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로마에 가서 교황으로부터 교단 설립 허가를 얻어낸다. 기독교사상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되는 프란체스코수도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특히 영험한 기적들을 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번은 포교를 위해 길을 걷고 있었는데 나무에 새들이 가득해 동행자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설교를 하러 갔는데 새들이 한 마리도 날아가지 않고 그를 에워쌌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전설은 프란체스코가 잠시 거주했던 구비오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일로 늑대가 사람들을 잡아먹자 늑대를 찾아가 꾸짖어 제압한 후 마을 사람들에게 "늑대가 사람을 해친 것은 배가 고파서 그런 것이니 늑대에게 먹을 것을 주면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의 말대로 행하니 이후 늑대로 인한 피해가 사라졌다고 한다.
프란체스코는 1220년 동료 피터 카타니에게 교단 지도권을 양도한 후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1224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입은 상처와 같은 성흔(성스러운 상처)을 받았고 그로부터 2년 뒤 찬송가를 부르다 영면했다. 그는 자신의 유해를 죄수들이 처형된 아시시의 지옥의 언덕에 안치해 달라고 유언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에서 죄수처럼 처형되었으므로 자신도 그러한 정신을 따르겠다는 뜻이었다. 프란체스코가 사후 2년 뒤인 1228년 성자로 추대되자 아시시인들은 그를 기리는 붉은 색의 성당을 지옥의 언덕에 세웠다.
울퉁불퉁한 언덕이라 먼저 평평한 지붕을 한 르네상스 양식의 하부 교회를 지은 후 그 위에 고딕 양식의 상부 교회를 건설했다. 이렇게 해서 프란체스코의 유해는 그의 소원대로 지옥의 언덕에 안치됐다. 그의 유해가 안치된 후 이 언덕은 구원을 의미하는 낙원의 언덕으로 명명된다.
프란체스코 사후 아시시는 예루살렘,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함께 기독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순례지가 된다. 평생 빈곤의 삶을 실천하고 소외된 자들의 편에서 그들을 돌보며 살다간 성자의 삶은 모든 기독교 신자들의 롤 모델이 됐다. 그래서 불과 인구 2만7000여명에 불과한 이 작은 도시는 언제나 성자의 정신을 기리려는 순례자들로 넘친다. 카를 블레센(1797~1840)이라는 독일의 풍경화가도 1828년 이 순례의 대열에 합류했다.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영향을 받은 이 화가는 단순히 순례만을 목적으로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성자의 숭고한 삶을 되새기는 한편 언덕에 우뚝 솟은 장밋빛 아시시 성당과 마을의 기념비적인 자태를 화폭에 담고 싶었다.
'아시시 풍경'은 땅거미가 질 무렵 마을 남쪽에 자리한 지옥의 언덕(낙원의 언덕) 아래에서 바라보며 그린 것이다. 화가는 화면을 크게 3개의 면으로 분할했다. 먼저 왼쪽 중간부터 오른쪽 상단에 이르는 사선의 공간에는 푸른색의 맑은 하늘이 자리하고 있다. 왼쪽 하늘부터 서서히 오렌지빛 황혼으로 물들고 있어 화면에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다.
가운데 부분은 아시시의 교회와 마을이 자리한 언덕 부분으로 성당은 붉은색이고 바위 언덕은 노을빛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그 빛은 마치 신의 자비로운 구원의 손길처럼 보인다.
맨 아래 부분은 야생의 자연으로 협곡을 사이에 두고 마을과 격리돼 있다. 이곳에서는 나무와 풀이 어지러이 자라고 있는데 이제 막 순례자들이 협곡을 건너기에 앞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세 개의 공간은 곧 천국,지상의 성지,세속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가 블레센은 그의 선배인 프리드리히나 달보다는 감정을 절제한 채 성지의 모습을 비교적 담담하게 묘사했지만 작업의 결과는 보는 이의 종교적 경건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한 경건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삶을 그대로 실천한 프란체스코의 삶과 오버랩돼 한층 배가된다. 블레센의 그림은 지금의 우리 사회가 얼마나 눌린 자의 편에 서서 종교적 관용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시각적 경구처럼 보인다.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