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몰린 日총리, 당내선 퇴진 압박…野는 '국회 해산' 요구

예산안 처리 불발 땐 '정부 마비'
일본 집권 여당 민주당의 내분 사태로 간 나오토 총리에 대한 퇴진 압력이 높아진 가운데 제1야당인 자민당이 '국회(중의원) 해산 후 중의원 선거'를 요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다니가키 사다카즈 자민당 총재는 지난 2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2011년도(20011년 4월~2012년 3월) 예산안을 내달 말까지 통과시켜 달라는 간 총리의 요청에 대해 "선거가 끝나면 여야를 떠나 협조하겠다"고 답변했다. 중의원 해산 · 총선거를 예산안 통과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이다. 여당 내에서도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 계파 의원들이 간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예산안 통과에 협조하지 않을 자세다. 17일 오자와 지지 의원 16명은 오자와 전 간사장에 대한 당의 탈당 압력에 반발해 새로운 회파(원내교섭단체)를 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예산 관련 법안은 여소야대의 참의원에서 부결되더라도 민주당이 과반수인 중의원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하면 재가결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중의원의 3분의 2를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16명의 표까지 잃게 되면 예산 관련 법안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간 총리는 당내 퇴진 압력과 야당의 중의원 해산 · 총선거 압박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셈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돼 예산안과 관련 부수 법안이 내달 말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예산집행이 중단돼 정부 기능이 마비되는 사상 초유의 비상 사태를 맞을 수 있다.

특히 정부의 적자국채 발행을 위한 특별공채법안이 내달 말까지 통과되지 못하면 세금수입으로 모자란 예산을 메울 국채를 찍어내지 못하게 된다. 일본 정부는 일단 세수와 세외수입, 최대 20조엔까지 발행할 수 있는 정부단기채권(FB) 발행 등으로 당분간 버틸 수는 있지만 6월께는 국가 예산 집행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인 1995년 상 · 하 양원의 여소야대로 연방 세출법안이 제때 처리되지 않아 정부 기능이 일부 정지된 적이 있다. 운영비가 없어 국립공원이 폐쇄되고 여권과 사증 발급,연금 지급 업무가 일시 중단됐다. 일부 공무원은 자택 대기상태가 되기도 했다. 만약 일본에서도 이런 사태가 발생하면 간 총리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때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진 사퇴하거나,중의원 해산 · 총선거 카드를 던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일본은 도쿄와 오키나와,이바라키를 제외한 44개 도도부현(都道府縣)에서 다음 달 1일 공고를 거쳐 10일 지방의회 의원 선거를 실시한다.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간 총리에 대한 퇴진 압력은 안팎에서 더욱 강해질 것으로 점쳐진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 회파(會派·가이하)

일본 국회에서 의사진행에 관한 중요한 안건을 협의하기 위해 일정한 수 이상의 의원들로 구성한 의원단체.한국으로 치면 원내교섭단체다. 일본에서 회파는 군소정당들이 연합해 구성하기도 한다. 반대로 같은 정당의 소속 의원들이 다른 회파를 구성할 수도 있다.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 계파 의원 16명이 별도의 회파를 만들겠다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