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 위의 진수성찬…1000엔으로 누리는 '별미 추억'

● 일본 맛기행…규슈 명품 도시락 '에키벤'

100년 전통 '어머니 손맛'
200종류…지방경제 '효자'

말고기 크로켓·은어 스시…
驛마다 지역 특산요리

젓가락을 내려놓을 수 없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이는 것을 어찌하랴.작지만 화려한 도시락이다. 양이 많다면 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한상차림이라고 해도 되겠다. 내용물을 채우는 솜씨가 어찌나 좋은지 빈구석이 없다.

큼직한 소음과 적당한 진동까지 낭만적인,기차여행의 묘미를 더해주는 주인공 '에키벤' 이야기다. ◆땅 위의 크루즈

에키벤은 일본의 기차역이나 객차에서 판매되는 프리미엄 도시락이다. 역을 뜻하는 일본말 '에키'와 도시락을 의미하는 '벤토'의 합성어다. 에키벤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일본 첫 철로가 신바시~요코하마 구간에 놓인 때는 1872년.그 16년 뒤인 1888년 주먹밥 도시락이 고우즈역에 등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가라이케 고지 JR규슈 사장은 "에키벤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일본만의 문화"라고 단정짓는다. 규슈 하카타역에서 가고시마 중앙역까지 관광열차를 타고 내달렸다. 내달 12일 신칸센이 완전 개통되는 하카타에서 구마모토까지는 릴레이 쓰바메 51호를 탔다. 구마모토~히토요시 구간은 특급 구마가와 1호,히토요시~요시마쓰 구간은 이사부로 1호다. 마지막 요시마쓰~가고시마중앙역 구간을 잇는 열차는 하야토노 가제 1호.윤이 자르르 흐르는 검정색 준마다. 구마모토에서 히토요시와 요시마쓰를 거쳐 가고시마중앙역에 이르는 길이 진짜 관광열차 노선이다. 신칸센으로 30분이면 주파하는 거리를 4시간 반에 걸쳐 유람한다. '땅 위의 낭만 크루즈'라고 할까.

◆작은 진수성찬

구마모토에서 출발하는 특급 구마가와 1호 객차에서 맛본 에키벤은 900엔짜리 '오데모양'.구마모토 지방 민요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다. 닭고기 구이와 닭고기를 넣어 지은 밥,구마모토 전통 말고기 크로켓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새우 인삼 등을 넣어 만든 곤약,겨자연근(가라시렌콘),은어 간장졸임을 앞에 두고도 어느 것을 먼저 먹을지 망설이게 된다.

전체적으로 단맛이 강한 편이다. 그러고 보니 하카타에서 미리 맛본 1050엔짜리 에키벤도 달았다. '붉은 와인 스테키(스테이크)'의 와인숙성 닭고기구이에서 번지는 단맛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다.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를 주제로 한 '료마,사쓰마 길 기행'도 마찬가지.1866년 가고시마로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 길에 오른 료마의 이름을 딴 이 에키벤의 흑돼지 구이도 달달했다.

규슈 지역에서 판매되는 에키벤은 200여종.해마다 하는 콘테스트에서 2,3위에 오른 에키벤 맛이 그러니 다른 것도 달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나치게 단 것만은 아니다. 옆에 앉은 연인이 사랑스럽게 보일 정도라고 할까. 일본 3대 급류라는 구마 강 풍경이 더 근사해 보이는 까닭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개장 100주년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마사키역의 정취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한점 맛본 '은어스시' 에키벤은 달지 않고 신편이다. 머리와 꼬리지느러미까지 통째로 초절임한 은어회가 나른해지는 오후를 번쩍 깨운다.

◆'백년의 여행 이야기'도

요시마쓰역에서 갈아탄 하야토노 가제 1호의 나무로 마감한 객차 내부도 고급스럽다. 가레이가와역의 에키벤 '백년의 여행 이야기,가레이가와'로도 유명하다.

이 지역에서 난 자연건조미 히노히카리에 표고와 죽순을 넣어 지은 밥,표고와 죽순을 넣어 튀긴 감자 크로켓,수제 보리된장을 바른 가지와 단호박 구이,무와 당근 식초 절임,무말랭이 조림,가고시마 특산 붉은고구마 튀김,가레이가와 크로켓 등이 보기 좋게 담겨 있다.

맛은 가라이케 사장의 말대로 "일본인들이 느끼는 어머니의 손맛"이다. 크게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게 어릴적 시골집 어머니가 지어 주신 무쇠솥밥 내음을 떠올리게 한다.

가고시마=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 여행 팁

대한항공(후쿠오카 가고시마 나가사키 오이타)과 아시아나항공(구마모토 미야자키)이 규슈 직항편을 운항한다. 최남단 가고시마까지 1시간20분 걸린다. 부산에서 비틀호를 타고 후쿠오카의 하카타항으로 들어가 JR규슈를 이용하는 기차여행도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규슈 내 특급열차 지정석과 보통열차를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레일패스가 있다. 3일권 1만3000엔(내달 10일부터 1만4000엔).내달 12일 하카타~구마모토(신야쓰시로) 구간 연결로 규슈 신칸센이 완전 개통된다. 북쪽 아오모리에서 남쪽 가고시마까지 신칸센으로 갈 수 있게 됐다.

코레일관광개발(1544-7755)이 KTX 비틀 신칸센을 연계한 '규슈 4일 여행' 상품을 개발 중이다. 후쿠오카~가고시마~이부스키~히토요시 일정을 따르며 지역별 관광명소를 구경한다. 관광열차도 체험한다. 90만원 선.내달 25~27일 후코오카 야후돔에서 열리는 박찬호 이승엽 출전 야구경기 관람상품도 내놓을 예정이다. 2박3일 일정에 50만원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