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퇴직연금법 개정 더 미룰 수 없다

최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고령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2000년 65세 이상 인구비중이 7%를 돌파,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이후 2018년에는 14%를 넘어서며 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노후대책 마련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2005년 12월 퇴직금제도의 개선을 위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는 200만명을 넘어섰고,적립금도 3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2020년께에는 퇴직연금 적립금이 149조원,근로자 가입률이 49%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부족한 수준이다. 적립금이 149조원이 된다 해도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0%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선진국인 네덜란드(132%) 홍콩(112%)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75.5%보다도 한참 뒤떨어진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고 퇴직연금을 노후대책 수단으로 자리잡게 하려면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정부는 제도 운영상 나타난 미비점을 개선하고 보완하기 위해 2008년 11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은 퇴직금 중간정산 제한,제도 유연성 강화,신설 사업장 자동가입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퇴직연금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근로자들의 수급보장도 강화될 전망이다.

문제는 정부 개정안이 2년 넘게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큰 틀에서 합의하고도 비정규직법,노조법,세종시법 등 정치적 이슈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느라 법안 심의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탓이다. 이 과정에서 퇴직연금사업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원입법들이 우후죽순으로 제출되면서 정부 개정안 처리가 더욱 늦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 처리 지연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상당수 기업은 이미 퇴직금 중간정산을 실시했다. 노후소득보장 강화라는 법 개정 효과를 반감시키는 사례다. 게다가 일부 금융회사들이 퇴직연금을 유치하기 위해 대출 꺾기 등으로 기업에 압력을 행사하면서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 올해는 퇴직연금시장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말로 퇴직보험 및 퇴직일시금 신탁의 효력이 정지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퇴직연금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4인 이하 사업장에도 퇴직급여 지급이 의무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법안 통과가 더 이상 지체된다면 기업의 혼란은 심화될 것이고 이에 따른 사회적 손실 또한 커질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개정안은 근로자의 안정적 노후재원 확보와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조속한 통과가 필요한 민생법안이다. 더 이상 근퇴법의 처리를 미뤄서는 안된다. 입법현장에서 정치적 입법과 민생 입법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호성 < 한국경총 상무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