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부자는 지금] 마땅한 투자처 찾지못해…임대용 건물·사모펀드 '기웃'

중동사태로 불확실성 커져
자문형 랩에서도 돈 빼
서울 강남에 거주하며 서울에만 주택 3채를 갖고 있는 자산가 Y씨(40)는 요즘 은행 및 증권사 PB(프라이빗뱅커)와 수시로 통화하고 있다. 여기저기 굴리고 있는 10억원가량의 투자처를 아직 확정짓지 못하고 있어서다.

한 대형 증권사 삼성지점 PB는 "중동사태 등으로 인해 자산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Y씨처럼 고민하는 자산가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돈 가치 떨어지고…투자처 마땅찮아

물가 급등으로 돈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은행 예금으로는 자산을 더 키우기는 커녕 쪼그라들 처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로 최소 1년간 돈을 묶어놔야 하는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4% 안팎)를 웃돈다.

리비아 사태가 터지면서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 유가가 급등하고,구제역과 이상기온 등으로 고기와 채소값도 오르며 중국발(發) 공산품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따라서 돈 가치는 당분간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직 한은 금융통화위원들이 올해 물가가 4% 이상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는 조사 결과도 있고,한은이 최근 전국 2071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5명 가운데 3명 꼴로 물가가 4% 이상 뛸 것으로 나왔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안전투자처인 채권시장도 불안하다.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과 주택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건설사와 저축은행 등이 위태로워진 탓이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이달 7일 연 4.10%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 주말 3.84%로 주저앉았다.

저축은행 사태로 은행 금리보다 조금 더 챙길 수 있는 투자 수단도 여의치 않다. 저축은행 예금 인출 사태가 일단락됐다고는 하지만,원금과 이자를 합쳐 5000만원까지만 보장하기 때문에 거액을 맡길 자산가가 많지 않다.

올 들어 상승세를 타던 주식시장도 하락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코스피지수는 지난달 21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2000선마저 내주며 지난 주말 1963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강남 부자들을 중심으로 붐을 일으켰던 자문형 랩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돈이 빠져 나가고 있다. 지난 23일 기준 삼성 · 대우 · 한국투자증권 등 10대 증권사의 자문형 랩 잔액은 7조2651억원으로 1월 말(7조2679억원)보다 28억원 줄어들었다.

전통적으로 큰 투자처였던 재건축 등 주택시장은 꿈틀거리기만 할 뿐 불확실하다. 주식이나 예금처럼 기회를 봐 투자금을 빨리 회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바닥에 근접했다"는 주장만 믿고 수억원을 투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임대 수익,알음알음 투자에 기웃상황이 이렇게 되자 강남 부자들은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연 '도시형 생활주택 투자설명회'에는 1000석의 오디토리엄이 꽉 찼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진행한 이날 설명회에서는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주어진 짧은 질문시간마다 수십명이 질문을 쏟아냈다.

설명회 참석자들은 대부분 서울 강남이나 분당신도시 주민이었다. 서울 반포동의 박모씨(59)는 "충남 천안에 빌딩을 갖고 있는데,이를 헐고 도시형 생활주택을 지을까 고민이 많다"며 "삼성전자 등 공장이 많아 상가보다는 주거시설을 지으면 임대 수익이 더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잠실동의 김모씨(62)는 "오피스텔을 분양받아 임대를 줬는데 전세난을 타고 수익률이 꽤 좋다"며 "최근 도시형 생활주택 분양이 많은데 여러 채를 사서 임대를 놓아도 좋을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돈 굴릴 데가 마땅찮아 임대 수익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사모펀드를 엮는 시도도 많아졌다는 전언이다. 사모펀드는 일반 은행이나 증권사 지점에서 파는 공모펀드와 달리 투자자를 밝힐 의무가 없고 30명 이하의 사람들로만 투자자금을 모아 투자한다. 주식이나 채권 등을 편입하는 등 일반 주식형(채권형) 펀드와 비슷하지만 부동산 펀드나 리츠(Reits) 등으로도 꾸릴 수 있어 인기다. 무엇보다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씩 내기 때문에 일반 공모펀드보다는 투자 수익률이 우수하다는 평가다.

이러다 보니 헤지펀드도 사모펀드로 꾸린다는 설명이다. 국내에서는 위험성 때문에 아직 헤지펀드의 개인투자는 금지돼 있지만,사모펀드로 자금을 꾸려 이를 집합투자기구로 등록하면 기관처럼 투자가 가능하다. 헤지펀드는 '연 10%' 이상의 수익을 추구하고,이를 위해 주식뿐 아니라 주식이 하락할 때 수익을 내는 곳에도 베팅한다. 하지만 자산가는 이 역시도 조심스럽다. 손경지 하나은행 PB는 "ELS(주가연계증권)이나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 등에도 관심이 있는 분위기지만,이 상품들도 단기 상품인 투자기간 3~6개월짜리를 주로 찾는다"며 "금리 인상과 주변 상황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라고 전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