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캥거루族'…청년실업 더 꼬인다

"좋은 직장 아니면 안간다"
석·박사 따고도 구직 포기
서울 상수동에 사는 A씨(31)는 친척이나 지인을 만나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취업 준비생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찾아 나선 적은 최근 2~3년간 단 한번도 없다. 말뿐인 취업 준비생이다. 2005년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한 뒤 방송사 입사 시험을 여러 차례 치렀으나 낙방하자 취업을 아예 포기하고 집에 머무르고 있다.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하고 낮에는 낮잠을 자거나 친구를 만나며 시간을 보낸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도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서 노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급여와 근무 조건이 좋은 일자리가 아니면 차라리 부모에게 의존해 집에서 게임이나 하면서 지내겠다는 '캥거루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통계청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지난해 43.8%로 10년 전인 2000년(47.2%)에 비해 3.4%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전 연령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61.2%에서 61.0%로 큰 변화가 없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경기 회복으로 일자리가 증가했는데도 청년 실업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해 전체 취업자 수는 32만3000명 늘어 6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지만 청년 실업률은 2년 연속 8%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청년층 경제활동 참가율 하락은 구직 활동을 중단한 청년층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안 가질 이유가 없는데도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상태인 '쉬었음'이라고 말한 청년층은 통계를 처음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22만5000명에서 지난해 27만4000명으로 늘었다. 구직 활동을 포기하고 집에 머무르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기와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진 시기가 일치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가임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이 2명 미만으로 떨어진 1984년(1.74명)을 전후로 태어난 사람들이 지금의 청년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가 한두 명뿐인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자란 세대가 성인이 된 뒤에도 부모의 품에 남으려는 '캥거루족' 성향을 보이고 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석 · 박사급 인력까지 졸업 후 눈높이가 달라 놀고 있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며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그릇된 인식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부모와 사회가 '캥거루족' 자녀들의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