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中서 24년째…1만명 '펑요 네트워크'…발로 뛰는 '안파이 朴'에 대륙이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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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탐구 - 박근태 CJ중국본부 대표지난해 10월 중국 베이징 공인체육관로의 태평양백화점 인근에 위치한 홍콩 오리구이집인 '1949'.베이징의 유명 인사들이 자주 찾는 이곳에서 지인과 점심 약속을 한 박근태 CJ중국본부 대표(57)는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했다. 새로 나온 CJ의 닭고기다시다를 주방장에게 건네기 위해서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로서 직접 물건을 들고와 써달라고 부탁하며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사람은 중국 전체를 통틀어 박 대표가 유일할 것"이라고 1949 지배인은 말했다. 이렇게 박 대표가 직접 제품을 '배달'하는 식당은 1949 외에도 베이징 21세기호텔,창청호텔 등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다.
대표적 중국通
수교 前부터 인연…"중국이 더 편해"
시간 날때마다 지인에 안부전화
비행기 아니면 사무실
車에 제품 싣고 다니며 "써달라"
"계획 짜다 날새지 마라"현장 중시
박 대표의 부지런함과 열정은 중국인 사이에도 정평이 나 있다. 우웨이(吳偉) 중국 국무원 신문출판총국 출판국장은 작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책과 친구'에서 "만일 중국 국영기업 CEO들이 CJ의 박 대표처럼 일한다면 중국에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라며 높이 평가했다. 박 대표가 갖고 있는 장점은 타고난 성실성만이 아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 중국통이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기 전인 1984년 ㈜대우에서 홍콩 근무를 시작으로 중국과 인연을 맺은 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에서 일한 게 24년째다. 대우차이나 대표로서 대우그룹 해체의 뒤치다꺼리를 끝내고 2006년 1월 CJ중국본부 대표로 합류했다. 그 사이 아들 두 명이 모두 중국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마치고 직장도 잡았다. "중국이 더 편하다"는 그의 말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안파이 박의 펑요(朋友 · 친구) 1만명
박 대표는 손에서 전화기를 놓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함께 출장을 자주 다니는 김성훈 CJ중국본부 상무는 "사무실을 나서 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탈 때까지 계속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뭔가 급한 일이 있어 누구와 긴급한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다.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마다 지인들에게 안부전화를 하는 게 오래된 버릇"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컴퓨터 안에 정리된 지인 명단에 올라 있는 사람의 수가 1만명에 육박한다. 한두 번 만나고 잊혀졌지만 명함만 남아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수시로 통화하고,만나서 식사하며 교류하는 친구들이다. 지방정부의 서기나 성장,공청단 등 공산당 조직의 간부,국영기업의 CEO 등 막강한 자리에 있는 사람도 많다. 20여년 전 처음 중국에 왔을 때 거래업체의 주임으로 퇴직한 이도 지금까지 연락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만큼이나 인간관계에서 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국에서 막강한 인맥을 구축한 박 대표가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오래 전에 얻은 당뇨병 때문에 술을 먹을 수 없다. "술 한잔 하지 않으면서 이 많은 사람들과 '절친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은 정말 대단한 일"(최훈 중국한국상회 사무국장)이다. 작년 이재현 CJ 회장이 갑작스레 중국을 1주일간 방문했을 때 성장을 포함한 최소한 시장급 이상 고위관리들과 매일 점심과 저녁 약속을 연달아 잡아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직급에 관계없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친구를 쉽게,그리고 깊게 사귀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그는 최대한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사람 사귀는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상대에 따라 대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 사람이 자주 전화통화하는 것을 좋아하는지,아니면 전화보다는 만나는 것을 선호하는지,만난다면 얼마에 한번 정도 만나는 것을 부담없어 하는지 등을 일일이 파악한다. 이른바 '맞춤형 인맥관리'는 상대방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없으면 실천하기 불가능한 방법이다. 중국 사람과의 깊은 인간관계는 박 대표에게 '안파이(按排)박'이란 별명을 만들어줬다. 안파이란 배열을 하거나 정리한다는 뜻의 중국말이다. "이런 상황에선 누구를 만나야 하고,저런 때는 또 누구와 면담을 해야 하는데 이건 어떤 사람을 통해야 한다는 게 박 대표의 머릿속에서 즉각즉각 나오는데다 약속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라고 CJ중국본부의 한 직원은 말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박 대표의 차는 움직이는 식품 매장이다. 흡사 군대의 PX차량 '황금마차'처럼 뒷 트렁크 안엔 CJ의 빵과 과자,다시다,식용유 등 온갖 상품이 가득 차 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트렁크에서 꺼내 CJ제품임을 설명하고 건넨다. 한결같이 웃는 얼굴을 하고 90도로 인사하며 선물을 주는 모습은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지만 마음속에는 목표를 꼭 이루고야 마는 '독기'도 있다. ㈜대우의 홍콩지사 시절에는 거래처 사장의 출근길을 6개월 동안 미리 나와 기다린 끝에 결국 거래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충돌이 있고 욱하고 화가 치밀 때도 있는데 "욕이 나올 땐 먼저 침을 삼키고 그래도 안되면 혀를 깨문다"고 그는 말한다.
6000명의 직원을 이끄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박 대표는 부하직원들에게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다. 실수한 게 있으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가르쳐 준다. "리더십은 권위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능력"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똑같은 잘못이 세 번 이상 반복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잘해보려는 절박한 의지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3진아웃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대신 개선되는 사람에겐 남들이 다 알 수 있도록 드러내서 칭찬을 한다.
박 대표는 늘 현장경영을 강조한다. 올해 CJ중국본부의 경영 슬로건은 '10%의 플래닝(planning),90%의 액션(action)'이다. 분기별,월별,주간 단위로 '계획'만 짜다가 날 새우지 말고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라고 주문한다. 박 대표 역시 한국의 97배에 이르는 중국땅 구석구석을 누비며 경영일선에서 뛰고 있다. 지난달 14일 베이징에서 랴오닝성 다롄으로 갔다가, 다음 날 새벽 비행기로 베이징에 들러 네이멍구 후허호터(呼和浩特)로 이동한 뒤, 16일엔 다시 상하이를 다녀온 후, 그 다음 날 베이징으로 올라왔던 출장 스케줄은 그에겐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집엔 들르지 못하고 비행기와 사무실만 오가는 날도 많다"며 웃었다.
◆달라진 중국,변하지 않는 한국
"중국을 너무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게 문제지요. " 박 대표는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말한다. 중국의 변화는 초고속으로 이뤄지는데,한국에선 여전히 중국을 개혁개방 직후 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우려다.
그는 올해 중국에 진출한 7000여개 한국기업의 모임인 중국한국상회 회장으로 재선출됐다. 변모한 중국에서 한국 기업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회원사 간 정보공유를 중요한 사업 아이템으로 잡았다. 박 대표에게는 경영자로서의 포부도 크다. "CJ가 제2의 창업을 선언한 중국에서 사업 확대에 전력을 다할 각오입니다. 건강함과 즐거움, 그리고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CJ 문화의 요체가 중국에도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게 경영자로서의 꿈이죠."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