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한 의원의 전세난 이중고

최근 국회 1층 농협사무실 앞에서 만난 김용태 한나라당 의원(초선)은 마침 1500만원을 대출받아 나오는 길이었다. 지역구인 서울 신월동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김 의원은 "작년에 3000만원을 올려줬는데 또 올려 달란다"고 대출받은 이유를 설명했다.

"보통 2년 단위로 전세계약을 하는데 해마다 전세금을 올려주느냐"는 질문에 그는"문래동 집을 전세 주고 신월동으로 이사오면서 올해 문래동 집을 처분해 신월동에 집을 살 생각으로 지난해 1년짜리 전세계약을 했던 것"이라며 "그런데 문래동 집이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국회의원 신분이라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올려 달라기는 그렇고,전셋집 주인에게 국회의원 신분에 돈이 없다고 버틸 수도 없고….김 의원은 '전세난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저는 나은 편입니다. " 저소득층이 몰려 있는 그의 지역구엔 13,15,17평짜리 다세대주택에 4000만~5000만원에 세들어 사는 주민들이 많은데,올해 전셋값이 갑자기 1000만~2000만원씩 오르면서 전세금을 못 구한 지역민들의 고생이 말도 못하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지역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모른 체 할 수도 없어 여기저기 쫓아다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주제가 개헌 얘기로 이어졌다. "개헌요? 저는 지역구에 가서 개헌의 '개'자도 못 꺼냅니다. 저도 그런 일에 신경쓸 틈도 없고요. 개헌의 원론적 취지에는 동의하지만,솔직히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입니까. " 그는 이런저런 할 얘기가 많지만 자신도 당적이 있고 조직 생활을 하는 만큼 그만하는 게 좋겠다며 말을 맺었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GH코리아와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전 · 월세와 고물가 등으로 "이전 정부보다 생활하기 힘들어졌다"는 응답률이 55%에 달했다. 개헌 문제에 대해 "관심없다,잘모르겠다"는 응답도 35%나 됐다. 그런데도 여권 핵심부는 개헌에 올인하고 있다. 대통령과 특임장관,집권여당 지도부 모두 입을 열었다 하면 '개헌'타령이다. 당장 환자의 몸에서 고름이 터져 즉각적인 치료가 급한 데도 의사는 "마음을 다스리고 체질을 개선하라"며 선(禪)문답하는 꼴이다. 박수진 < 정치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