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iz School] 사회·거래선·투자자·고객·종업원…'5박자 만족경영' 길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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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Master Firms of Endearment(사랑받는 기업)'사랑받는 기업'이 현실성 없는 개념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은 이해당사자 일부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방법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종업원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는 높은 급여를 줘야 하는데,그렇게 되면 고객에게 싼 가격을 제공할 수 없다고 믿는 식이다. 이해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모순이고,결국 특정 이해당사자들에게 그 피해가 전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일리 있는 얘기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협력업체에 원가부담을 전가시키고,종업원 급여를 올려주기 위해 고객에게 비싸게 파는 일이 실제로 많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해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사랑받는 기업' 모델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사회의 양념같은 'SPICE 모델'…모두를 만족시킨 기업들 특징
홀푸드의 '상호의존선언서'…"사회는 함께 사는 생태계" 강조
투자자·고객·종업원의 성숙…지속 가능한 성장·경쟁력 높여
#SPICE 모델'사랑받는 기업' 연구자들은 2003년부터 3년간 진행한 '사랑받는 기업(Firms of Endearment) 선정' 프로젝트를 통해 '사랑받는 기업' 28개사를 선정한 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분석했다. 그 결과 이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SPICE 모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SPICE란 사회(society) 파트너(partner) 투자자(investor) 고객(customer) 종업원(employee) 등 이해당사자 그룹의 영어단어 머리글자를 딴 약어다. 원래 '양념'이란 뜻인 만큼 사회의 양념 같은 존재로서의 '사랑받는 기업'을 잘 표현한 모델이다. '사랑받는 기업'은 이 SPICE 모델을 통해 기업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과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는 것을 목표로 모든 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회사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유기농 식품업체로서 아주 충성도 높은 고객을 많이 갖고 있는 홀푸드(Whole Foods)다. 이 회사에는 '사명선언서' 대신 '상호의존선언서'가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 회사의 목표는 모든 이해당사자들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홀푸드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책임은 이해당사자들의 이익과 요구가 전체 이해당사자 집단 속에서 균형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해당사자들의 균형을 위해 애정을 갖고 들어야 하고,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며,성실하게 행동해야 한다. "모든 매장에 걸려 있는 이 '상호의존선언서'를 통해 직원들은 홀푸드가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회사가 아니라 이해당사자 모두와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생태계 자체의 경쟁력을 목표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여러 가지 장점이 생긴다. 우선 특별한 마케팅이 없어도 충성스러운 고객들이 수요를 뒷받침해준다. 만족도 높은 종업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만큼 입소문이 퍼지면서 단골 고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좋은 이미지가 퍼지면서 사회적인 인식도 높아 브랜드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홀푸드는 양계장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뛰노는 닭이 나은 계란을 판매한다. 가격이 다른 곳보다는 상당히 비싼 편이다. 이 계란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홀푸드에서 계란을 사는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옳은 일을 하잖아요. 우리가 사줘야죠."
#현실적인 모순
문제는 기업을 둘러싼 이해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모순적이라는 데 있다. 예를 들면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높은 급여를 주고,복리후생 혜택을 강화하고,교육 기회를 늘리면 종업원 만족도는 크게 높아지게 돼 있다. 그런데 그런만큼 회사 운영차원에서는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다른 이해당사자인 고객에게 그 피해가 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종업원뿐만 아니라 고객도 배려하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격을 올리지 않고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한다면 고객 만족도가 높아지지만,또 다른 이해당사자들에게 피해가 가게 된다. 바로 협력업체다. 협력업체는 원청업체가 소비자 판매가를 낮추기 위해 원가부담을 전가시킬 경우 운영에 막대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이 이번에는 종업원,고객과 함께 협력업체들도 배려해준다면 또 어떻게 될까. 당연히 투자자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종업원 급여,고객만족,협력업체 배려 등 때문에 적은 수익을 올리게 돼 투자자들은 배당을 많이 받을 수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종업원 고객 협력업체 투자자까지 모두 만족시킬 경우는 어떤가. 이익을 낸 전부를 투자자들에게 배당으로 돌려주는 방식이라면 말이다. 이 경우에는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 가운데 하나인 사회에 피해가 가게 된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보면 SPICE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모순이다. 어느 한 그룹을 만족시키면 다른 집단에는 피해가 가게 돼 있다. '사랑받는 기업' 모델을 비현실적이라거나 사회주의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조건
'사랑받는 기업' 연구자들은 그러나 이런 모순은 1차원적인 분석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각 이해당사자의 1차적 욕구만 볼 때는 모순이 있는 것 같지만 전체 생태계 경쟁력의 관점에서 보면 "남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 된다"(라젠드라 시소디어 벤틀리대 교수)는 것이다.
시소디어 교수는 매슬로의 '욕구의 5단계'를 원용해보면 기업의 욕구에는 3단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가장 아랫단계가 생존,그 다음이 성공,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변혁(transformation)인데 각 단계의 욕구가 충족되면 상위 단계의 욕구로 올라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창업 초기에는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다하지만,그것이 충족되면 업계에서 인정받는 성공한 기업이 되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맨 마지막 단계에서 기업들은 성공 이상의 목표를 갖게 되는데 사회,더 나아가 인류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를 각 이해당사자들의 욕구 피라미드로 설명하면 SPICE 모델이 갖고 있는 현실적 모순도 해결된다. 먼저 종업원을 보자.종업원들의 기본적인 욕구는 돈이다. 생계유지를 위해 돈이 필요해서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칭찬받고 승진도 하는 '인정(recognition)'의 욕구를 갖게 된다. 맨 위에 있는 것이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는 단계다. 이 단계에 오면 직업은 천직이요 소명이 되는 것이다.
고객을 보자.고객의 첫 욕구는 기대만족이다. 휴대폰을 사면 안내서에 나온 기능이 다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그 다음 단계는 욕구(desire)의 만족이다. 휴대폰을 통해 자신이 갈망하던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폰이 새로 나올 때 텐트치고 기다리는 충성고객들은 자신도 상상 못한 무엇인가를 애플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자의 경우는 어떤가. 아주 기초적인 욕구는 투자한 기업으로부터 제때 배당금을 받는 것이다. 이를 '거래적 정렬'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다음 단계로 욕구가 상승하면 '주주로서 제대로 대접받기'를 원하는 '관계적 정렬단계'로 올라간다. 그것이 충족되면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명예와 유산의 가치를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이들 3개 이해당사자 그룹의 1차적인 욕구를 보면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모순이다. 돈을 원하는 종업원,기대를 만족시키길 바라는 고객,거래적 정렬을 요구하는 투자자들을 각각 만족시키는 방법은 기업의 이익이라는 같은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집단이 모두 성숙해진 지금은 이들의 욕구는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일에서 의미를 찾는 종업원,자신도 모르는 새로운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기업의 전도사가 된 고객,그리고 그런 활동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주로서의 자부심을 주는 기업을 보는 투자자들은 서로의 가치가 절대 모순적이지 않다. 오히려 열정적으로 일하는 종업원들이 고객도 모르는 가치를 창출하려고 노력하고,그 과정에서 전 사회가 그 회사를 사랑하게 돼 투자자들도 자부심이 높아지는 상승작용이 일어나게 돼 있다.
결론적으로 SPICE는 각 이해당사자들이 1차적 욕구로 충돌을 빚는 예전에는 모순적인 모델이었지만,사회 전체가 고령화되고 인터넷으로 연결된 21세기에 들어서는 이들의 욕구 자체가 성숙해지면서 보완 가능한 자족형 모델이 됐다. 이해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킴으로써 생태계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고,그를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구가하는 '사랑받는 기업'의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 원장 yskwon@hankyung.com
▷연세대 철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
▷저서=경영자를 위한 변명,심플의 시대 등
▷역서=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경영의 미래,피터 드러커의 리더스 윈도우,경영이란 무엇인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