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뷰]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난 가장 행복한 햇빛 노동자"

● 사진작가 배병우 씨

풍경을 많이 찍는데
매일 새벽 어시장 나가던 아버지…나도 아침마다 빛의 숲속으로

세계 아트페어서 인기
엘튼 존·루이비통 회장도 반해…한 점에 수천만원대 호가

고등어 샌드위치
그리스 어부들이 잘 먹어…한번 만들었더니 맛있더라고

팝스타 엘튼 존과 루이비통 회장이 한눈에 반한 사진.그 속에는 한국의 나무와 자연,빛이 살아 움직인다. 그가 찍은 '경주 소나무'를 6년 전 2800여만원이나 주고 산 엘튼 존도 꿈틀거리는 소나무와 빛의 에너지에 반했다. 그의 사진은 한 점에 수천만원대를 호가하며 세계 아트페어와 경매시장의 인기 품목이 된 지 오래다.

40년 넘게 '빛의 그림'을 렌즈로 그려온 사진작가 배병우 씨(61).그를 경기도 파주의 예술인마을 헤이리 작업실에서 만났다. 3층으로 된 건물의 1층에는 탁구대와 피아노가 놓여 있다. 2층은 작업실 겸 주방.인사를 나누자마자 각종 야채와 토마토 등을 익히고 무쳐 내놓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여기는 술집이에요. 소설 쓰는 김훈 선생도 여기 와서 대낮에 취하고,모두들 오면 퍼 마시죠.요리라고 할 것도 없어요. 그냥 있는대로 해먹지요. 술은 옛날에 막걸리를 좋아했고 지금은 와인을 좋아해요. 주량은 와인 한 병 정도.한참 마실 때는 위스키를 5병씩 마셨고 둘이 제일 많이 마실 때는 소주 한 박스를 마셨는데….우리나라 큰 기업 회장들이 열댓 명 온 적이 있어요. 다른 손님은 200명까지 온 적도 있고.아,우리집 메인 요리는 생선회인데….이게 제가 쓰는 칼입니다. 왼칼이에요. 왼손잡이거든요. "

그는 왁자한 선술집 주인처럼 호탕하고 유쾌했다. 환갑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체격도 우람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유도선수 출신이었다. 감정이 섬세한 사진작가와 우락부락한 유도선수라….

"어렸을 적엔 시를 좋아하고 그림도 그리곤 했어요. 어느 날 덩치 큰 놈한테 얻어맞고는 유도 도장에 가서 미친듯이 하루 6시간씩 연습했죠.고등학교 때 체중이 69㎏이었는데 딱 근육밖에 없었어요. 운동은 제가 제일 잘 했어요. 집중적으로 하니까. 1년 만에 석권했죠.그리고서는 안 했어요.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죠.하루 종일 운동하고 돌아와서는 밤새 그림 그리고….하긴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유도선수였으니 외모가 닮았죠?"여수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에 생선을 원없이 먹고 살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어시장 경매사였거든요. 아침에 지게꾼한테 가장 맛있는 생선만 가져오라고 해서 받아 먹었어요. 우리 어머니나 형제 자매들도 먹는 걸 다 좋아하고 또 요리를 잘해요. "

단 하루도 어김없이 경매 시간을 놓치지 않고 새벽 어시장으로 나서던 아버지를 닮아서 그럴까. 그는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한다. 해뜨기 전 안개와 섞인 광선의 미묘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른 새벽 장엄한 안개에 휩싸인 소나무를 보면 성스러움과 함께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의 소나무는 구불구불한 형상을 하기도 하고 수직으로 강렬하게 뻗기도 한다. 서로 의지하듯 교차하기도 하면서 특유의 거친 질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의 작품을 두고 일본 평론가 지바 시게오는 '배병우는 자연을 눈이 아닌 신체로 본다'고 표현했다. 자연을 찍으려 한다기보다 자연이 배병우를 인간계에 보냈다고 해도 좋다는 것이다. "1990년대 국립미술관에서 전시할 때 '한 달 후 당신을 만나러 한국에 갈테니까 열흘 동안 시간을 내달라.네가 여행가고 싶은 데를 가자'고 해서 함께 여행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요. 그랬더니 '일생 동안 당신을 연구하겠다'고 해요. 다른 어떤 평론가보다 진지한 사람이지요. 우리 식구들하고 다 친하고…."

그는 사진을 '빛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표현했다. 해가 뜨고 지는 과정을 완전히 이해해 빛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태양이라는 광원을 잘 관찰하고 파악함으로써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예술가. 그래서 그는 자신을 '햇빛 노동자'라고 부른다.

"사진이 뭐냐….빛으로 그리는 그림입니다. 붓으로 그리느냐 빛으로 그리느냐,전 다큐멘터리를 다루는 게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담는 거죠.포토그래피도 그래요. 포토는 빛,그래피는 능률적으로 그린다는 거잖아요. 대학 때 원서를 보면서 사진 개념을 빨리 잡았죠.다행히 풍경부터 찍기 시작했고.유행을 따라서가 아니라 내 의지로 내가 가장 접근하기 쉬운 걸 찍었는데 더욱이 제 소스가 동양이잖아요. 서양적인 베이스에서 결국 내가 뭘 가지고 살아남을 것인가,제 동네로 갈 수밖에 없다,미국놈은 자기네 동네 찍지 우리 동네 찍나,우리가 우리 동네 찍어야지 그랬죠."그러고 보면 그의 사진은 시에 가깝다.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에 갔을 때였어요. 그 음악제의 사진이 다 제 작품이어서….그때 오스트리아 사람하고 점심을 먹는데 그 양반이 제 사진을 '빛글'이라고 표현해요. 저는 '빛그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그렇게 표현하더라고요. "

서양에서 그의 사진을 더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세계 최고의 컬렉터 중 하나로 꼽히는 악셀 베르보르트가 그를 찾아왔다가 '홀딱 반해' 오는 17일부터 내달 28일까지 벨기에 앤트워프의 악셀 베르보르트에서 개인전을 갖기로 한 것도 이런 연유다. 그는 지난달부터 이달 19일까지 스웨덴 스톡홀름의 단체전에 이어 오는 6월1일부터 11월13일까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도 단체전을 갖는다.

대화 중간에 또 문인들 얘기가 나왔다. 황지우 박노해 시인 등과의 사연 끝에 김수영 시인의 사진과 친필 시 '풀'의 복사본 액자를 보여주며 "집사람의 이모부가 바로 김수영 시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시인 중엔 서정주 시인이 제일 좋아요. 그 사람은 딱 시같아.그림 중에는 겸재 정선의 산수화를 좋아합니다. 소나무 그린 화가 중에 최고죠.이거 보세요. 모든 예술이 후광에서 나오죠? 오브제이지만 빛이 뒤에서 오면 성스럽게 보입니다. 독일 사람들이 제 사진을 비밀스럽다고 하는 게 그게 다 후광이거든요. "

하긴 예술가들의 감수성은 이리저리 자유롭게 넘나들며 보폭도 넓다. 홍익대 응용미술학과와 대학원 공예도안과를 졸업한 그가 독학으로 사진을 배운 과정처럼 그는 늘 자유롭고 경계가 없다. 잠시 후 그가 고등어 샌드위치를 내왔다. "그리스에 갔더니 어부들이 고등어를 통으로 구워 빵에 끼워 먹더라고요. 뼈째로 먹는 지중해 음식,따뜻할 때 먹어야 해요. "

그동안 찍은 필름은 10만커트 정도 된다고 했다. "죽을 때까지는 30만커트가 되겠지요. 커트 수가 중요한 게 아니고 훌륭한 사진 10개만 있어도 됩니다. 제가 갖고 있는 필름도 우리 가족 것이 아니에요. 누군가 공공의 일을 하면 다 주겠다고 했죠.저는 한번도 돈 벌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젊은애들이 너무 돈 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금융위기 터질 때 봤잖아요. 그 돈 다 없어지는 거.그러니까 돈만 밝히면 안 됩니다. 손해본 듯 살아야지 삶의 주도권을 쥘 수 있어요. "그는 또 "요즘 사진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에게 좋다"고 덧붙였다. "이게 움직이는 일이잖아요. 빛과 함께.그래서 건강에도 좋지요. "

만난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