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시인·마술사·성우·작곡가…"김과장, 자네는 못하는 게 뭐야"

● 직장 내 팔방미인

바이어 사로잡는 마술
장미 마술로 결혼 골인한 이과장…마술 보여주며 바이어 마음 열어

일은 언제 하냐고?
등단 시인·기타리스트 윤과장…공로상·모범사원상 표창만 6개

올해 입사 14년째인 농심 홍보팀의 윤성학 과장.그에게는 늘 따라붙는 타이틀이 하나 있다. '등단 시인'.신문사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의 길에 들어선 그는 창비사를 통해 시집 '당랑권 전성시대'를 냈고,이 책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진흥기금 대상 저서로 뽑혀 1200만원의 상금도 받았다. 시인으로서의 이력 못지않게 직장 생활의 성적표도 충실하다. 공로상,모범사원상 등 개인 표창과 부서 표창을 합해 6번의 상을 받아 사내 최다 수상자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렸다. 올 상반기 두 번째 시집을 낼 예정인 윤 과장은 사내밴드 '辛나는 밴드(신뺀)'에서 세컨드 기타리스트로도 활약 중이다.

'직장 팔방미인'.본업 외에도 다양한 재주로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면서,직장에 활력소가 되어 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만화,더빙,MC,작곡,마술,여행 가이드,시나리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 뺨치는 재능을 자랑한다. ◆직장 '국민 MC'

한국야쿠르트 총무팀의 황규환 과장은 '야쿠르트 아줌마'들에게는 강호동이나 유재석 못지않은 '국민MC'로 통한다. 신입사원 시절 영업점 야쿠르트 아줌마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조그마한 모임에서 재치있는 입담과 기타를 곁들인 노래 솜씨로 1시간가량 좌중을 사로잡은 것이 입소문을 타 이제는 사내 모든 행사의 단골 MC 역할을 하고 있다. 그에게 '마이크'는 단순히 재밋거리가 아니라 프로가 되기 위한 치열한 자기계발의 과정이기도 하다. 전문 MC 수준의 사회를 보기 위해 레크리에이션 강사 자격증까지 땄다. 행사가 잡히면 직접 대본을 쓰고,사비를 들여 의상을 준비했다. 행사를 망치지 않을까 하는 스트레스에 도망치고 싶은 때도 많았지만,전국 어딜 가나 자신을 알아보고 환호하는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힘'의 원천이다. 팔방미인은 한 가지 재주에만 그치지 않는 법.황 과장은 이 회사 사보의 한 페이지짜리 만화 '야툰'을 4년째 이어가고 있는 만화가 '황 작가'이기도 하다.

◆'쉘 위 댄스'의 마술사코오롱그룹 계열의 종합상사인 코오롱아이넷 화학원료팀의 이지용 과장은 마술로 일과 사랑을 모두 잡은 케이스다. 입사 3년차 징크스에 걸려 있던 2005년,마치 영화 '쉘 위 댄스'의 주인공처럼 끌려 들어간 마술 클럽이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마술을 개인기로 무장하면서 회사에서 인정 받고,평생 동반자도 얻었다.

"화학원료 트레이딩 담당이다보니 중동,아시아,남미 등 세계 각국의 바이어들과 만나는 일이 많아요. 협상 과정에서 각종 마술을 보여주면 얼었던 분위기도 부드러워지고,가격을 깎거나 물량을 늘리는 데도 적지 않은 효과가 있습니다. " 그의 가방 안엔 늘상 카드,동전,링 등 마술도구가 한 가득 들어있다.

마술 덕에 실적이 크게 올라가면서 우수 직원들을 뽑아 보내주는 해외 연수도 두 번이나 다녀 왔다. 해마다 회사 창립기념일에 마술쇼를 보이는 것은 물론,2009년부터는 사내 마술 동아리를 만들어 이끌고 있다. 이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아내에게도 비둘기와 장미를 동원한 마술로 '작업'을 걸어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 ◆스토리 텔러에서 성우,작곡가까지

구리 제련업체인 LS니꼬동제련 홍보팀의 신동광 과장은 만화 스토리 작가와 사내 성우,MC 등 다방면으로 재능을 발휘하고 있다. 네이버 최고 인기 웹툰 중 하나인 김양수 작가의 '생활의 참견'에 '동광'이라는 실명 캐릭터로 출연해 재미있는 경험담을 들려주면서,틈나는 대로 에피소드도 제공하고 있다. 또 PR 전문지 'The PR'의 만화 '홍보인 25시'도 신 과장의 아이디어로 꾸려지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방송인을 꿈꾸던 그는 사내 동영상물에 더빙을 하는 성우,송년회나 체육대회 등 이벤트 기획 및 MC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지난해 말 송년회에서 매끄러운 진행으로 행사를 빛낸 덕에 경영진으로부터 '새로운 구리 광산(신동광 · 新銅鑛)'이란 별명도 얻었다.

대기업 A사에 근무하는 오 모 차장은 본인이 작곡한 가요 5곡이 저작권협회에 등록돼있는 대중가요 작곡가다. 비록 히트는 치지 못했지만,자신이 만든 곡으로 음반까지 나왔다. 대학시절 전공은 전자공학이지만,음악을 부전공하면서 실력을 쌓아 왔다. "회사에서 사내 방송에 쓰이는 배경음악도 수십곡 작곡했어요. 특별히 돌아오는 부수입은 없지만 회사 업무에 나름대로 기여했다는 데 뿌듯함을 느낍니다. "◆나는야 '전문가'

LS니꼬동제련 금속화성마케팅팀의 남경연 씨는 국내 최고 수준의 중국 여행전문가를 자부한다. 대학시절 어학연수로 접한 중국에 매료된 뒤 '고집불통 남경연의 베이징에서 본전뽑기' 등 지금까지 4권의 중국 여행가이드북을 냈다. 특히 이직 과정의 틈을 이용해 중국인 친구와 티베트를 여행한 뒤 함께 펴낸 '하늘길의 종착역 티베트'는 국내 유일의 티베트 여행 가이드북으로 꼽힌다. 남씨는 사내에서 중국 관련 컨설턴트 역할도 한다. 직원들의 중국 여행 코스도 짜 주고,상사 자녀들의 어학 연수나 유학 등에 대해서도 도움말을 준다. 일본과의 합작기업에 근무하다보니 까다로운 한자가 나오면 무조건 그에게 들고 온다고….

교원그룹 매거진팀의 변기석 씨는 극작가로도 활약한다. 2009년 부산일보의 희곡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물 좀 내려주세요','라디오 드라마' 등 두편의 작품이 대학로 연극무대에 올려졌다. 글재주에 말재주까지 더해 사내 회식 때 사회는 늘 그의 몫이다. 그가 진행을 맡으면 변기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분위기를 흡수한다고 해서 이름을 본떠 붙여진 별명이 '변기'.대기업 B사의 강 모 대리는 전문 강사 수준의 헬스 트레이너다. 대학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아 피트니스 클럽에 다닌 것이 계기가 돼 이제는 트레이너 수준의 강습 노하우를 갖게 됐다. 상담을 요청하는 동료들에게 트레이닝 프로그램과 식단을 직접 짜주고,스트레칭 지도와 마사지까지 해준다. 유능하고 친절한 헬스 선생님으로 몸값이 올라 점심을 사 주겠다는 동료들이 줄을 서 있다.

윤성민/고경봉/조재희/강유현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