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작 사부작…엄마 품속처럼 정겨운 반나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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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바래길
조개 캐러 다니던 고단한 길
초록 마늘밭·감청색 바다
봄 바람엔 짙은 그리움이…
비탈 층층마다 다랑논, 한번 거꾸로 걸어볼까
백상연 씨(52)가 말했다. "바래길은 어머니 품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드는 길이에요. " 눈을 살짝 감고 턱을 들어올리며 숨을 들이쉬는 표정이 천상 엄마 젖무덤을 파고드는 어린애 같다. 이 남자,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바람 세고 파도 높은 바닷가 길의 느낌을 포근한 엄마 품속에 빗대다니. 아무리 남해 바래길 1코스의 바래지기라고 해도 말이다. 지난 20년,좋다는 길은 안 걸어본 데가 없고 바래길도 직접 만든 사람이니 일단 한번 믿기로 한다.
◆푸근한 엄마 품속경남 남해군 남면 평산 1리 회관을 지나 평산항에서 남해 바래길 1코스에 든다. '다랭이 지겟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유구 진달래군락을 거쳐 사촌해수욕장~선구몽돌해안~향촌조약돌해안~향촌전망대~가천 다랭이마을에 이르는 16㎞ 길이다. 하얗게 페인트 칠을 한 시멘트 대문 기둥에 붙은 '남면로 1739번길' 표지를 보며 마을 골목을 걷는다. 시멘트 포장이 된 짤막한 골목에 비친 아침 햇살에 따스한 기운이 감돈다.
한참을 걸어도 '바래길'과 '다랭이 지겟길'이란 길 이름이 붙은 까닭을 모르겠다. 백씨는 "'바래'는 남해 바닷가에 살던 우리 어머니들의 고단한 삶을 총칭하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어머니들은 바닷물이 빠지기 무섭게 갯벌로 달려가 조개며 해산물을 채취해 시장에 내다 팔았고,그 돈으로 자식들 공부시키며 살림을 꾸렸다는 것이다. 농사 지을 땅 한 뙈기도 구하기 힘든 척박한 환경에서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바다 건너 여수에서 똥거름을 가져와 삿갓배미를 일궜다고 해서 나온 '똥배기질'이나,'남해 사람들은 고춧가루 서말 먹고 물밑 30리를 간다'는 얘기나 모두 이곳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전하는 말이다. '다랭이'와 '지겟길'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다랭이 지겟길은 우리네 어머니 시절의 고단했던 삶을 위로하며 그 정을 그리워 하는 길이다. 걸으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지나온 길이 예뻐서가 아니라 문득문득 사무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어머니처럼 길도 장식 없이 수수하다. 초록 마늘밭과 감청색 바닷물,그 사이를 걷는 트레커와 화물선이 어울린 범머리 쪽 풍경이 그림 같다.
◆야성의 비룡협곡길항촌 쪽에서 대양이 확 펼쳐지는 등 몇 번의 반전을 거듭하는 다랭이 지겟길의 끝은 가천 다랭이마을이다. 바다로 뚝 떨어지는 비탈에 100여층의 논이 계단식으로 조성된 곳이다. 여행자에게는 봄부터 가을까지 초록과 황금빛으로 물드는 층층 다랑논 풍경으로 알려져 있다. 길을 거꾸로 걷는 것도 괜찮겠다. 4~5시간 잡고,노을이 질 때에 맞춰 평산 쪽을 향하면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다와 하늘색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남해에는 이런 바래길이 4개 개발돼 있다. 창선면의 2코스 말발굽길,3코스 고사리밭길,4코스 진지리(잘피)길 해서 총 55㎞다.
상주면 바래길은 개발 중이다. 다른 길과는 달리 남성적인 코스다. 서포 김만중이 유배된 노도를 보며 시작해 상주 은모래해변에서 끝을 맺는다. 대량마을에서 시작한다. 처음 시멘트 포장길 오르막이 심해 제법 힘이 든다. 선녀탕이 첫 번째 전망 포인트.버려진 해안경비초소가 색다른 느낌을 준다. 이 코스 제일경을 꼽으라면 비룡계곡이다. 해안절벽이 V자로 파고든 곳이다. 안쪽 주상절리 절벽이 뚜렷하다. 바깥쪽 꼬리 형태를 보면 용이 주상절리 절벽을 타고 오르는 형상이다.
"주상절리가 용의 비늘 같지 않나요. 안쪽 깊숙이 거북바위도 있어요. 밖으로는 대양이 펼쳐져 있고요. 이 코스는 시시각각 경관이 달라져 지루해 할 틈이 없는 게 특징이죠." 상주면 바래지기인 이태균 씨(46)의 설명이 그럴 듯하다. 대내라는 곳은 여름에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는 곳.서쪽으로 여수 돌산도 향일암도 보인다. 이 길의 끝은 상주 은모래비치.우뚝한 금산과 옆구리 빨간 2층 유람선이 한눈에 잡히는 해변 풍광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 여행 팁
서울에서 경부·중부고속도로~대전통영고속도로~사천분기점~남해고속도로~진교·하동나들목~남해대교~남해.사천나들목에서 나와 사천 방향 3번 국도를 따라 가면 창선삼천포대교를 지나 남해로 들어간다. 서울강남고속터미널에서 남해행 버스가 하루 10회 다닌다. 4시간30분 걸린다.
멸치요리가 별미다. 우리식당(055-867-0074)이 멸치요리로 소문이 나 있다. 죽방렴 생멸치를 초고추장에 무친 멸치회무침(대 3만원)이 일품이다.
힐튼 남해 골프&스파 리조트(055-860-0100)가 근사하다. 내달 말까지 '체리 블러썸 패키지'를 판매한다. 디럭스 스위트(45평형) 1박,메인 레스토랑 브리즈 조식,피크닉 스낵 세트 등을 포함,2인 기준 33만7000원.홍익여행사(02-717-1002)는 남해 바래길 걷기도 하는 '외도 1박2일 KTX 여행' 상품을 내놓았다. 부산까지 KTX를 타고 가 외도를 구경하고 통영 케이블카를 탄다. 이튿날 3대 관음기도처인 금산 보리암을 구경하고 가천 다랭이마을 바래길 트레킹을 즐긴다. 밀양에서 KTX를 타고 돌아온다. 어른 2인1실 기준 주중 18만9000원,주말 19만9000원. 남해군청 문화관광과(055)860-8601,www.tournamhae.net
남해=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