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압은 정상인데 자꾸 충혈…'시력도둑' 녹내장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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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내장 원인과 치료당뇨병성 막망증,노인성 황반변성과 함께 실명의 3대 원인으로 꼽히는 녹내장 환자가 늘고 있다. 한국인은 북방계 아시아 민족의 일원으로 안압은 정상인데 시신경이 압박받아 시력이 나빠지는 '정상 안압 녹내장'의 비중이 높다. 따라서 40대 이후부터 안압 측정은 물론 정밀검사를 통해 녹내장을 조기에 진단 ·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세계 녹내장 주간(3월 둘째주)을 맞아 기창원 한국녹내장학회장(삼성서울병원 안과 교수)의 도움말로 녹내장의 실태,진단,치료 전략 등에 대해 알아본다.
한국인, 정상안압에도 녹내장 생겨
40대 이후엔 정기검사 받고
평소 넥타이 느슨하게 매야
혈관 수축시키는 커피·담배 자제
학회가 2007년 11월부터 4개월간 충남 금산군 남일면의 40세 이상 주민 1532명(남자 645명,여자 88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일명 남일스터디) 녹내장의 국내 유병률은 3.5%이고 이 중 77%는 정상 안압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유병률이 미국의 2%에 비해 1.5배,정상 안압 녹내장 비율이 고안압 녹내장에 비해 3.4배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안과학회지 올 1월호에 실렸다.
안압은 눈 내부의 압력으로,주로 안구를 채우는 방수의 양과 흐름에 의해 좌우된다. 정상 안압은 11~21㎜Hg로 이보다 높으면 녹내장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인처럼 정상 안압 녹내장 비중이 높으면 그만큼 진단이 쉽지 않아 주의가 요망된다. 지난해 7월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가 몽골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역학조사를 통해 '정상 안압 녹내장 유전자군'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을 정도로 한국인 등 북방계 아시아인은 녹내장에 취약한 유전적 요인을 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북방계 아시아인은 정상 안압 녹내장이 고안압 녹내장에 비해 2~3배 많은 것으로 추정됐으나 이번 '남일스터디'는 이 같은 추정을 웃도는 수치를 제시해 관심을 끈다.
높은 안압은 눈으로 받아들인 빛을 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시신경을 눌러 녹내장을 초래한다. 안압이 정상이거나 그리 높지 않은데도 녹내장이 잘 생긴다는 것은 인종마다,사람마다 시신경이 견딜 수 있는 안압이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시신경과 관련한 혈류장애도 영향을 미친다.
녹내장의 원인은 지금도 명확하지 않지만 40대 이후의 고령,인종적 특성,가족력,고도근시의 증가,눈의 외상,당뇨병 고혈압 등 전신질환 등이 유병률을 높이는 요인이다. 가족력의 경우 부모가 녹내장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녹내장 발병 확률이 2~3배,형제가 녹내장이면 5~7배 높다. 그러나 설령 녹내장 유전자가 있더라도 무조건 유전되지는 않는다. 좋은 생활습관이나 환경적 요인에 따라 녹내장 발병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아진다. 녹내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개방각 녹내장(서구인의 80% 이상)이나 정상 안압 녹내장은 중심 시력보다 주변 시력이 먼저 손상돼 초기에는 시력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하고 통증도 거의 없다. 점차 악화되면 터널에서 밖을 보듯 주변 시야가 좁아져 중심부만 보인다. 환자가 시력 저하를 느낄 정도라면 이미 시신경이 많이 손상된 상태라고 봐야 한다. 갑작스레 방수의 배출이 막혀 안압이 상승하는 '폐쇄각 녹내장'은 구역질,구토,두통,시력 저하 등의 증상을 나타낸다. 급성 녹내장을 신경성 질환으로 여기고 두통약 등을 먹고 버티면 치료가 어려워지므로 주의한다.
녹내장으로 진단하면 안압을 떨어뜨리기 위한 약물치료를 하게 된다. 혈관을 이완시켜 방수 배출을 촉진하는 약물,방수 생성 자체를 줄이는 약물 등을 사용한다. 정상 안압 녹내장 환자라고 해도 안압이 평균치보다 높은 쪽에 속하는 만큼 안압을 낮추는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해야 한다. 증상이 빠르게 나빠지거나,약물이 효과가 없으면 레이저 치료나 수술요법을 시행한다. 안구에 미세한 구멍을 내 안구에 고인 물이 원활히 빠져 나가도록 하는 방법이다. 시신경 혈류 감소가 원인이면 별도의 치료법을 쓴다.
녹내장학회가 추산한 국내 녹내장 유병률을 적용하면 전체 인구 중 175만명 정도가 녹내장을 앓고 있는 셈이지만 2008년 한 해 녹내장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31만명 정도로 전체 녹내장 환자 중 18% 정도만이 치료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기창원 학회장은 "발견하기 어려운 정상 안압 녹내장 환자를 초기에 효과적으로 가려내려면 시야검사,시신경검사,전방각경검사,눈 컴퓨터단층촬영(OCT) 등이 필요하다"며 "한번 손상된 시신경은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기 진단이 필수적이며 진단 후에는 고혈압과 당뇨병처럼 평생 악화하지 않게 관리하는 약물치료를 철저히 따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