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일본 경제가 멈췄다] 누출된 방사선, 허용치 2배 넘어…190명 피폭·주민 21만명 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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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쓰나미에 이어 '원자력 공포'가 일본 열도를 뒤덮었다. 전대미문의 강진(强震)으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에 폭발 사고가 일어나면서 방사성 물질의 누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본 정부의 필사적인 대응으로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사태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비켜간 것으로 일단 관측되지만 안심하기엔 이른 상황이다.
1호기 벽·지붕 날아가
3호기 냉각시스템도 문제…바닷물까지 주입 '긴급상황'
추가 폭발 가능성도
대피범위 인근 20㎞로 확대…여진 계속…피해규모 확산
◆쓰나미,원전을 무너뜨리다도쿄에서 170㎞가량 떨어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은 12일 오후 3시45분쯤.원자로 핵심시설인 격납용기를 둘러싼 벽과 지붕이 날아갔다. 폭발의 1차 원인은 전력 공급이 끊어진 것이다. 원자로는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해 냉각수를 계속 흐르도록 해야 한다. 전력 공급이 차단되면서 이런 순환 과정이 멈춰 버렸다. 냉각수 펌프가 정지했고 원자로는 급속히 달아올랐다. 원전 측은 소방차 등을 동원해 강제로 냉각수를 주입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과도한 수증기가 발생,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일본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폭발의 여파로 '노심(爐心)' 일부도 녹아내린 것으로 보인다. 노심은 핵연료인 우라늄이 분열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취합하는 부분으로 핵연료봉과 함께 감속재,냉각재 등이 들어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우라늄 연료 중 일부가 녹는 '노심용융'이 일어나 후쿠시마 원전 1호기 주변에서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일본 원전 역사상 노심용융이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도통신은 "냉각수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후쿠시마 원전 1호기 원자로의 핵연료봉 가운데 일부가 공기 중에 노출돼 일부 증발한 것으로 보인다"며 "소방 당국이 노출된 핵연료봉을 식히기 위해 바닷물을 퍼붓고 있다"고 전했다. 바닷물은 담수에 비해 불순물이 많아 향후 원자로 재가동은 불가능할 전망이다. ◆1호기에 이어 3호기까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3호기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13일 브리핑을 통해 "3호기의 냉각시스템도 작동이 중단돼 기술자들이 노심용융을 차단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3호기 연료봉이 잠시 노출돼 부분적 용융이 진행 중일 수 있다"고 밝혔다.
추가적인 폭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교도통신과 AFP통신 등은 "이번 강진의 직격탄을 맞은 제1원전 1,3호기 외에도 제2원전의 1,2,4호기 등 5~6기의 냉각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다"며 "추가 폭발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미 정책연구소(IPS)의 핵전문가인 로버트 알바레즈는 "사고 원전에서 바닷물까지 끌어다 쓰는 것은 그만큼 사안이 급박하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늘어나는 원전 폭발 피해
도쿄전력은 이날 오전 "사고 발전소(1호기) 지역의 방사선량이 법적 한계치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공인 기준치는 500마이크로시버트(μSv · 방사선량 측정단위)인데 1호기 부근에서 검출된 방사선량은 기준치의 두 배를 넘는 1204.2 μSv였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인근 주민 21만명에 긴급 대피령을 내렸다. 주민 대피 범위는 원전 1호기의 경우 사고 당일 반경 3㎞였다가 갈수록 확대돼 13일엔 20㎞로 넓어졌다.
방사성 물질에 노출된 피폭 피해자 숫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요미우리신문은 "원전 폭발 당시엔 인근 고등학교 운동장에 있던 3명만 피폭됐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실제로는 원전 인근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 시민 등 190여명이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피터 브래드포트 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위원장은 "원자로 냉각에 실패한다면 체르노빌과 유사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