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연맹도 리비아 비행금지구역 요청
입력
수정
카다피軍, 라스라누프 장악리비아 내전에 대한 서방의 군사개입을 반대하던 아랍연맹(AL)이 입장을 선회했다. 카다피군이 시민군을 잇따라 물리치면서 리비아 국민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시민군 후퇴 거듭…패색 짙어져
EU·美, 군사개입 눈치보기
이집트 국영 TV는 아랍연맹이 카이로에서 22개 회원국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등 11개국 외무장관들과 이집트 주재 대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12일(현지시간) 긴급회의를 열고 리비아 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촉구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회의에 참석한 11개국 외무장관 중 9명이 찬성했으며 알제리와 시리아는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정은 시민군이 카다피군에 밀려 패색이 짙어지자 리비아 국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아랍연맹은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군사적 개입을 반대해왔다. 아랍연맹 관계자는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군을 이끄는 국가평의회와 접촉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군사개입 눈치보는 서방세계
국제사회는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한 외교적 압박은 강화했지만 실력행사에는 눈치를 보고 있다. 전날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는 리비아 시민군 주도 국가평의회를 공식적인 '정치적 대화 상대'로 인정했다. EU 정상들은 이와 함께 카다피의 즉각적인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정상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대화 상대는 벵가지에 있는 국가평의회"라며 "목숨을 걸고 카다피와 결별한 카다피 정권 출신 인사들이 카다피보다 더 믿음직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군사개입에는 유보적이다. EU 정상회의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군사개입에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군사개입 여부를 계속 저울질하는 분위기다. 이날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바레인을 비공식 방문한 자리에서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현명한 조치인지 아닌지가 더 큰 문제"라며 "정치적 차원에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랍연맹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요청으로 미국의 입장도 다소 유연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투표에 앞서 아랍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제임스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카다피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리비아 국민에 대한 지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군 운명 풍전등화카다피군이 시민군 장악 지역을 잇따라 탈환하면서 시민군이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AFP통신은 이날 카다피군이 리비아 동부 석유수출 도시 라스라누프를 완전히 손에 넣고 시민군의 본거지 중 하나인 서부 미스라타를 공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때 수도 트리폴리 근처를 모두 장악했던 시민군은 후퇴를 거듭하며 궁지에 몰리고 있다. 미스라타는 지난 9일 수도 트리폴리의 서쪽 관문인 자위야를 카다피군이 탈환한 후 리비아 서부에 유일하게 남은 시민군 장악 지역이다. 로이터통신은 "카다피군이 미스라타에서 약 10㎞ 떨어진 곳까지 접근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스라타가 카다피 진영 수중으로 떨어지면 시민군은 미스라타와 이미 카다피군이 장악한 라스라누프 사이 일부 지역으로 몰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카다피군은 파죽지세로 내전을 끝낼 기세다. 카다피의 차남인 세이프 알 이슬람은 이탈리아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전 국토의 90%를 장악했다"며 "반정부 세력과는 어떠한 협상도 없으며 곧 반정부 세력을 모두 격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