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업 투자때 '사회적 책임' 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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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지배구조 등 반영…적극적 주주권 행사 하기로국민연금이 앞으로 기업의 탄소배출량과 지배구조 건전성 등에 따라 투자 규모를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으로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연금 사회주의' 우려도 커져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최근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내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원칙'과 관련된 팀을 만들었다"며 "앞으로 ESG 원칙을 투자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편적 소유주로서 국민연금의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이와 관련,"최근 기금운용본부 전략실에 담당 직원들을 배치했다"며 "ESG 원칙에 따른 투자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2년 후엔 ESG 원칙에 따른 투자가 실행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투자원칙 바꾼다
국민연금은 현재도 일부 투자에 '사회적 책임'이라는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2조3000억원을 사회책임투자(SRI) 펀드에 넣었다. 전 이사장은 국민연금이 직접 주식투자를 할 때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정한 원칙을 지키지 않는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고,기존에 투자한 회사라도 돈을 뺄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이 도입하기로 한 'ESG 원칙'은 △탄소와 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하는 회사(환경) △사원 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지역사회와 교류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회사(사회) △기업경영이 투명한 회사(지배구조)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2009년 가입한 유엔 책임투자원칙(PRI)도 제1항목으로 ESG 원칙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미국 캘퍼스 등 해외 주요 연기금들도 대부분 ESG 원칙을 지키고 있다"며 "우선은 ESG 원칙을 지키는 기업에 투자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투자에서 배제하는 식으로 소극적으로 시작하겠지만,앞으로 주요 기업 지분율이 계속 올라가면 주주권 행사를 어떻게 할지도 연구할 것"이라고 했다.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적극적 주주권 행사 방법을 검토하겠다는 얘기다. 해외주식 의결권 대행 등을 맡은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국민연금 같은 장기 투자가는 미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자신이 주요 주주인 투자 기업에 ESG 원칙을 지키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경영 개입 우려
국민연금은 현재 국내 주식에 55조원가량을 투자하고 있다.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가량이다.
원종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은 4년 후 국민연금의 투자 비중이 시가총액의 8%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무렵 국민연금의 주요 기업에 대한 지분율은 10~20% 안팎에 이르게 된다. 웬만한 금융회사의 1,2대 주주이며,주요 제조업체들의 2~3대 주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특정한 원칙을 갖고 압박한다면 버틸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국민연금이 공공성을 빌미로 기업 경영을 좌우할 경우 '연금 사회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ESG 원칙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고만 해도 기업으로서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이상적인 ESG 원칙도 좋지만 기업 경영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